박길응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승정원승지, 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덕일(德一)
진정재(眞靜齋)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98년(선조 31)
사망 연도
미상
본관
밀양(密陽)
주요 관직
승정원승지|참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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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승정원승지, 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덕일(德一), 호는 진정재(眞靜齋). 박억년(朴億年)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박세민(朴世敏)이고, 아버지는 현감 박신(朴信)이며, 어머니는 최철견(崔鐵堅)의 딸이다. 이안눌(李安訥)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음보(蔭補)로 찰방이 되어 1634년(인조 12)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38년 사간원정언이 되었고 1641년 사헌부지평으로 옮겼다가 이듬해 다시 사간원정언이 되었다.

1648년 사간원사간에 승진하였고, 1652년(효종 3) 사헌부집의가 되었으며 곧 이어 세자보덕이 되었다가 승정원승지를 역임하고 참판에 이르렀다. 학문을 매우 좋아하여 성인이 되는 방법, 곧 학행일치의 법을 연마하였다.

또한, 뒤에 장현광(張顯光)을 사사하여 그가 지은 「우주요괄(宇宙要括)」을 상고하고 잘못된 곳을 고쳐 임금께 차기(箚記)를 붙여 올렸다. 또, 안회(顔回)의 일생을 연구하여 그의 장점을 표출하여『학안록(學顔錄)』이라 이름을 붙이고, 또 자기의 의견서를 첨가하여 왕에게 올려 인정을 받았다.

참고문헌

『인조실록(仁祖實錄)』
『효종실록(孝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집필자
권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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