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덕일(德一), 호는 진정재(眞靜齋). 박억년(朴億年)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박세민(朴世敏)이고, 아버지는 현감 박신(朴信)이며, 어머니는 최철견(崔鐵堅)의 딸이다. 이안눌(李安訥)의 문인이다.
음보(蔭補)로 찰방이 되어 1634년(인조 12)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38년 사간원정언이 되었고 1641년 사헌부지평으로 옮겼다가 이듬해 다시 사간원정언이 되었다.
1648년 사간원사간에 승진하였고, 1652년(효종 3) 사헌부집의가 되었으며 곧 이어 세자보덕이 되었다가 승정원승지를 역임하고 참판에 이르렀다. 학문을 매우 좋아하여 성인이 되는 방법, 곧 학행일치의 법을 연마하였다.
또한, 뒤에 장현광(張顯光)을 사사하여 그가 지은 「우주요괄(宇宙要括)」을 상고하고 잘못된 곳을 고쳐 임금께 차기(箚記)를 붙여 올렸다. 또, 안회(顔回)의 일생을 연구하여 그의 장점을 표출하여『학안록(學顔錄)』이라 이름을 붙이고, 또 자기의 의견서를 첨가하여 왕에게 올려 인정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