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연기 출생. 아버지는 박용순(朴容淳)이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 고학으로 중·고등학교 과정을 거쳐 도호쿠제국대학[東北帝國大學] 이학부 지질광물학과를 1930년에 졸업하였다.
귀국 후 경성고등공업학교와 경성광산전문학교에서 15년간 교수로 재직하면서 연구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술폰화유지제조법의 발명(일본특허 제70930호), 함경북도 지역에서의 안테신 발견, 알칼리 혼블렌드의 발견, 극동지역 최초의 금강석 원석 발견, 화학적 방법에 의한 고광물의 감정과 유통성분의 검출법, 강원도 지역에서의 하석광상(霞石鑛床)의 발견, 황해도 지역에서의 알칼리장석광상의 발견, 각종 코발트광 감정법의 발명(일본특허 제169534호)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광복 후 미군정청 상무부 지질광산연구소장을 거쳐 국립지질광물 연구소장, 초대원자력 위원을 지냈으며, 1958년 이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교수를 거쳐 인하공과대학 교수를 지냈다.
그 동안 형석광의 선광방법의 발명(특허 제36호), 「강원도 양양 철산광상 성인(成因)에 대한 연구」, 아연광의 처리방법의 발명(특허 제1254호), 아연광의 제련방법의 발명(특허 제1437호) 등 연구업적이 있다.
50년에 걸친 강단생활을 통하여 많은 지질학도들을 길러내는 한편, 연구활동에 전념하였고 대한지질학회를 창립한 우리나라 지질학계의 태두였다. 청조소성 훈장·국민 훈장·무궁화장·수당과학상·5·16민족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학술원 부원장을 역임하였다.
지질학회는 그의 이름을 기려 운암지질학상 제도를 마련, 매년 지질학계에 공헌이 큰 사람에게 상을 주고 있다. 주요저서로는 『한국의 광물자원』(1953)·『방사성광물의 탐광』(1961)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