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밀양(密陽). 호는 춘실(春實).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장수 출신.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체결되자 무주 · 장수 · 진안 · 용담(龍潭) 등지에서 국가존망의 때에 모두 분발하여 사심을 버리고 나라를 구하자는 격문을 배포하였다.
이 격문을 보고 모인 의병 52명을 이끌고 용담 구봉산(九峰山)에서 일본군과 접전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으며, 1906년 문태서(文泰瑞)의 의병대와 합세하여 의병대장으로 추대되었다. 1907년 무주 상창곡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였고, 1908년 무주 구천동에서 교전하였다.
1909년 3월까지 진안 천반산(天盤山) · 성수산(聖壽山), 장수 덕유산(德裕山), 구천동, 적상산(赤裳山) 등지에서 60여 회나 교전하였으며, 200∼700여 명의 의병을 지휘하고 경상북도와 전라북도를 무대로 일본군 300여 명을 사살하고 400여 정의 무기를 노획하였다.
1909년 3월 일본군에 붙잡혀 7월 17일 교수형을 선고받고 전주형무소에서 복역 중 1914년 탈옥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대구형무소로 이송되자, 같은 해 6월 형무소의 벽을 파괴하여 100여 명의 동지를 탈옥시킨 뒤 자진(自盡), 순국하였다.
1968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