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해방 이후 「부인상」·「나부」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밖에 1940년에 조직된 다이헤이요미술학교 동문 단체인 PAS동인전 참가와 1943년 선전 특선작가 신작전 초대 출품 등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각광을 받았다. 광복 후 1947년 서울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고,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 때에는 서양화부 추천 작가로 참가하였다.
이후 초대 작가와 심사 위원을 역임하며 두드러진 사실적 묘사력과 서정적 표현 수법의 여인상과 초상화, 자연 풍경을 많이 그렸다. 그리고 꽃과 과일을 소재로 삼은 정물화도 즐기면서 건강하고 활기찬 작품 활동을 보여 주었다. 6·25 중에는 국방부 육군 종군화가단 단장으로 활약하며 전쟁 관련 스케치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1955∼1961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1958년 목우회(木友會) 창립 회원, 1974년 한국신미술회 창립 회원 및 회장, 1961∼1965년 수도여자사범대학 교수, 1966년 상명여자사범대학 교수, 1972∼1976년 영남대학교 교수 및 예술학부장, 1978∼1981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을 지냈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박득순화집』(동아일보사, 1990)
- 국립현대미술관(www.moca.go.kr)
주석
-
주1
: 일제 강점기에, 서울 지역에 둔 행정 구역. 총독부령(總督府令)에 의하여 1910년 10월 1일 자로 이전의 한성부를 고친 것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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