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5년(우왕 1) 심왕(瀋王) 탈탈불화(脫脫不和: 瀋王 王蒿의 손자)가 공민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려는 음모를 꾸미고 입국하려 하므로 밀직부사(密直副使)로서 부원수 겸 도체찰사(副元帥兼都體察使)가 되어 대비하였으며, 이듬해 서북면원수 겸 도순문사(西北面元帥兼都巡問使)가 되었다.
1377년 지문하(知門下)로서 서해도조전원수(西海道助戰元帥)가 되었고, 뒤이어 상원수(上元帥)가 되어 풍주(豊州: 지금의 황해도 풍천)에 침입한 왜구를 물리쳤는데, 이 때 부사(副使) 조천옥(趙天玉) 등 10여 인이 전사하였다.
또 나세(羅世)와 함께 신천(信川)·문화(文化)·안악(安岳)·봉산(鳳山) 등지에 침입한 왜구를 무찔렀다. 1378년 문하평리(門下評理)로서 안주상원수 겸 서북면도체찰사(安州上元帥兼西北面都體察使)가 되었다.
1379년에 찬성사(贊成事) 양백연(楊伯淵)이 시중(侍中)을 죽이고 스스로 시중이 되려고 한다는 것으로 옥사(獄事)가 일어났는데, 이 때 최영(崔瑩)과 함께 그 일을 맡아 귀양갔던 양백연을 죽이고 그 여당을 죽이거나 귀양보내었다. 시호는 경렬(敬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