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박봉래(朴琫來) · 박정문(朴正文). 자는 순경(順京).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김제 출신. 1905년 항일투쟁을 목적으로 만주로 망명하여 항일운동에 종사하였다.
1919년 3·1운동 이후 이범윤(李範允)이 인솔하는 독립운동단체인 의군부(義軍府)에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1920년 동지들과 같이 연해주(沿海州)에 가서 소총 · 탄환 등 무기를 구입하여 만주 나자구(羅子溝)에 있는 대한의용군단장 이병준(李秉俊)에게 인도하였으며, 그 해 8월 다시 망원경 · 시계 등을 구입하여 의군부의 이범윤에게 주었다.
또, 10월 초 연해주에 가서 소총 125자루, 탄환 1만 2500발을 구입하여 만주로 운반도중 일본경찰에 잡혔다. 1921년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고등법원에 상고하였으나 1921년 형이 확정되었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