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수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 대한제국기
조선 후기에, 암행어사, 공조판서,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온경(溫卿)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반남(潘南)
  • 사망 연도1899년(고종 36)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21년(순조 2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맹수 (한국학대학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설문해자익징 미디어 정보

설문해자익징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암행어사, 공조판서,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온경(溫卿). 실학자 박지원(朴趾源)의 손자, 박종채(朴宗采)의 아들이며, 우의정 박규수(朴珪壽)의 아우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64년(고종 1) 증광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한 이후 관직에 올랐다.

1865년에 사간원대사간을 거쳐 1867년에는 암행어사로 임명되어 경상도 지방관들의 탐학을 규찰하기도 하였다. 1873년 참찬관을 거쳐 대사간직에 재임명되었다. 이듬해에는 이조참의에 올랐으며, 1878년에는 예방승지를 지냈다.

1883년에는 성균관대사성이 되었으며, 이듬해 갑신정변 직후에는 행호군(行護軍)직에서 공조판서로 특별히 발탁되었으며,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난 뒤인 1894년 4월에는 형조판서를 지냈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누락된 내용을 보충하기 위하여 고대 종정(鍾鼎)의 유문(遺文)을 연구하고 문자의 원리와 본뜻을 고증하여 밝힌 『설문해자익징(說文解字翼徵)』이라는 저서를 남겼다.

참고문헌

  • - 『고종실록(高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