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종 승려로 영산재 기능 보유자이다. 일생을 전통불교음악인 범패에 대한 연구와 그 보급에 노력한 예술인이다. 1933년에 경성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곧 부친인 박운허 스님을 은사로 삼아 서울 신촌 봉원사(奉元寺)에서 출가하여 영진불교전문강원 대교과를 수료했다.
1934년 이월하(李月河) 스님으로부터 범패를 전수받고 1969년 옥천범음회를 설립하였다. 1973년에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영산재 기능보유자로 지정받은 후 한국전통불교문화의 계승과 한국불교음악의 원류인 범패 보급을 위해 헌신하였다.
1987년 봉원사 영산재가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 단체지정을 받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매년 단오절 영산재를 열었다. 전통 범패의 맥을 잇기 위해 김구해(준 전승자), 마일운(봉원사), 조동선(봉원사), 이기봉(봉원사), 동희(청량사) 등 1,200여명의 후학을 양성했으며 이러한 공로로 1994년 옥관문화훈장을 수상하였다.
송암은 범패가 구전심수(口傳心受)의 묘미를 갖고 있다고 하여 평소에 “이 세상 어떤 것으로도 범패의 신묘한 성음(聖音)을 기록할 수는 없다. 오로지 입으로 소리를 전하고, 그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근래 오선지에 범패를 채보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데, 그것으로 범패의 제 맛을 살릴 수는 없고 단지 범패의 뼈대만을 기록할 뿐이다. 그나마 범패를 현대 사람들에게 널리 알린다는 점에서 고마울 따름”이라고 하였다.
영산재보존회 총재와 부설 범음대학 학장을 역임하였고, 1998년는 태고종 승정에, 1999년 태고종 대종사에 추대되었다. 2000년 2월 1일에 나이 86세, 법랍 67세로 봉원사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