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박덕수(朴德洙)·박재근(朴材根). 호는 철마(鐵馬). 함경북도 온성 출신.
1919년 3월 만주 왕청현(汪淸縣)에 망명하여 동포 수천 명을 동원, 만세시위를 벌였다. 러시아에서 기독교도를 중심으로 조직된 신민단(新民團)의 왕청현지부 결성에 참여하여 신민단소속 독립군 사령관 겸 참모장에 임명되었다.
1919년 12월까지 신민단장 김규면(金圭冕) 등과 함께 러시아에서 많은 무기를 반입하여 신민단군의 무장을 강화하였다. 1920년에는 명월구(明月溝) 이청림(二靑林)에 사관학교를 설립하고 독립군을 양성하였다. 같은 해 5월 부대를 지휘하여 함경북도 온성군 진입작전을 펴던 중, 두만강을 건너는 일본군 제19사단 일부 병력을 발견하였다.
독립군을 맞은편 산중에 매복시켰다가 급습, 전멸시켰다. 일본군이 대거 침입하자 홍범도(洪範圖)와 협의하여 봉오동 동쪽 고지에 매복하였다가 일본군을 습격하여 커다란 전과를 올렸다. 봉오동전투에 이어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와 함께 청산리전투에도 참여하여 크게 활약하였다.
같은 해에 대전자(大甸子) 무관학교를 재정비해서 독립군을 양성하였다. 1928년 동녕현(東寧縣)에서 활약하다가 일본군에게 잡혔으나 탈출에 성공, 광복이 되자 귀국하였다.
1968년에 대통령표창, 197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