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함평 출신. 1908년 4월 10일 함평군 용진산(龍珍山)에서 조경환(曺京煥)의 의병진에 가담하여 그 달 13일까지 함평에서 활약하였다. 그 뒤 전수용(全垂鏞)이 의병진을 편성하자 1908년 8월 23일 그 휘하에 들어가 호군장(護軍將)이 되었다.
그리하여 1909년 5월까지 전라남도의 함평 · 광주 · 장성 · 영광 · 나주 · 담양, 그리고 전라북도 순창 등지에서 일본의 수비대 · 헌병대 및 경찰과 교전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그러다가 전수용이 잠시 의병진을 해산하고 귀향하게 되자, 그 해 5월 28일 그뒤를 이어 흩어진 의병 30여 명을 모아 의병부대를 재편성하여 그해 7월 17일경까지 영광 · 장성 · 광주 · 나주, 그리고 전라북도 무장(茂長) 등지에서 왜적을 무찔렀다.
그러다가 일제의 이른바 남한대토벌(南韓大討伐) 때 잡혀 옥고를 치른 끝에 죽었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