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대한제국기 때, 고광순 의진에서 참모로 활동하였으며, 가산을 팔아 의병을 일으켜 항일투쟁을 전개한 의병장.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907년 8월 고광순의진에 입대하여 참모가 되었으며, 전라남도[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창평 제심리를 중심으로 대규모 거사계획을 숙의하였다. 1907년 9월 14일 고광순의진은 신덕균의 제의에 따라 일본인이 많다고 알려진 동복읍을 습격하여 적들을 궤산시키고, 하동 화개동으로 들어갔다.
그 뒤 구례 연곡사에 본영을 정하고 의진의 부서를 개편하였는데 참모로 유임되었다. 같은 해 10월 17일 광주에 주둔하였던 일본수비대의 기습공격을 받아 대장 고광순과 부장 고광훈(高光勳)이 붙잡혔으나, 신덕균은 참모인 윤영기(尹永淇)와 소모(召募)하기 위하여 외지에 나가 있었기 때문에 화를 면하였다.
그 뒤 가산을 팔아 무기를 갖추고 의병 100여 명을 모아 재기하여 운봉 · 함양 · 순창 등지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908년 전라북도 순창 회문산(回文山)에서 왜군에게 붙잡혀 그해 11월 정읍 고부에서 피살,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몽암창의사실(蒙庵倡義事實)』(안종섭 편)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독립운동사자료집』 3(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 『독립운동사』 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
- 『호남절의사』(김정상 편, 송천서원,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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