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희

  • 역사
  • 인물
  • 개항기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때, 신흥무관학교 학도감, 신민부 보안사령, 성동사관학교 교관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이칭
  • 검추(劍秋)
  • 이칭박두희(朴斗熙), 박영섭(朴寧燮)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30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96년(고종 33)
  • 출생지충청남도 부여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광남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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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신흥무관학교 학도감, 신민부 보안사령, 성동사관학교 교관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개설

일명 박두희(朴斗熙)·박영섭(朴寧燮). 호는 검추(劍秋). 충청남도 부여 출신.

생애 및 활동사항

1915년 은사 이시영(李始榮)과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에 입학하였으며, 졸업 후에는 교관과 학도감(學徒監)으로 있었다.

1919년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에 적극 참여 투쟁했으며, 1920년 청산리 독립전쟁에 참가하였다. 그뒤 러시아로 들어가 자유시참변을 겪고, 다시 만주로 돌아와 1925년 신민부(新民府) 결성에 참여, 보안사령(保安司令)이 되었다.

또한 신민부가 전투력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목릉현(穆陵縣) 소추풍(小秋風)에 설립한 성동사관학교(城東士官學校)의 교관으로 있으면서 500여 명의 독립군 간부를 양성하였다. 그뒤 국내에 잠입하여 군자금 모금에 진력하다가, 1930년 러지아 고루지게에서 공산주의자의 습격을 받고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8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한국독립운동사』 4(국사편찬위원회,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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