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한서(漢瑞), 호는 매헌(梅軒). 아버지는 부사 박은춘(朴殷春)이다.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가 서울을 버리고 피난하자, 곧 의주 행재소로 달려가 호종(扈從)하였다.
윤두수(尹斗壽)·이항복(李恒福) 등의 천거로 중부별장(中部別將)을 제수받았고, 이듬해 환도 후는 판관에 임명되었다. 1598년 아버지가 해상에서 전몰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왕에게 출정을 자청하여 어구마(御廐馬)와 궁시(弓矢)를 하사받았으며, 남해로 내려와 통제사 이순신(李舜臣)을 만난 뒤, 정기수(鄭麒壽)·이완(李莞) 등과 함께 적을 무찌르다가 전사하였다. 뒤에 아들 박경추(朴慶秋)·박경상(朴慶祥)·박경운(朴慶云)은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켜 삼대가 임난구국(臨難救國)의 모범을 보였다.
선무공신(宣武功臣)에 녹훈되었으며, 병조참의에 추증되었다. 흥양(興陽)의 봉암사(鳳巖祠)에 제향되었다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봉암사가 훼철되자 고흥(高興)의 숭양사(崇陽祠)에 부친 박은춘과 함께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