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명술(明述). 호는 와유당(臥遊堂) 또는 소암(巢巖). 선성 괴리(宣城槐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참봉 박수일(朴遂一). 어머니는 평양조씨(平壤趙氏)로 인의(引儀) 조인복(趙仁復)의 딸이다. 1596년(선조 29)에 장현광(張顯光)의 문하에 들어가서 글을 배웠는데, 박진경의 나이 16세이었다.
왜란 중이라 백성이 모두 기근(饑饉)으로 유리하였으나 솔잎을 씹으면서 오직 독서에만 열중했다. 아버지가 왜병에게 피살되자 병화를 무릅쓰고 시신을 찾아 장사지냈다. 1634년(인조 12)에 영숭전(永崇殿) 참봉(參奉)에 제수되었는데 최명길(崔鳴吉)이 한번 만나고자 했으나 거절하고 가지 아니했다.
1636년 봄에 나라에서 충의사(忠義士)를 뽑아서 모병하자 향천(鄕薦)에 의하여 모집에 응했고, 겨울에 청나라 병사가 쳐들어오자 최현(崔晛)과 더불어 의병을 일으켰는데, 본부의 도대장(都大將) 전식(全湜)이 박진경을 시켜 의병을 영솔하게 하고 성주(星州)·대구(大邱)·예천(醴泉)의 군병을 더 거느리고 북상(北上) 할 것을 지시하였으므로 먼저 의병을 이끌고 적암리(赤巖里)에 나가서 세 고을의 군대를 기다리는 동안 남한산성(南漢山城)이 함락되어 파병(罷兵)하였다.
성품이 산수(山水)를 좋아하여 산수화 수폭과 천문(天文)·지도(地圖)등을 벽에 걸어두고 즐겼다. 남강서원(南岡書院)에 제향(祭享)되었으며, 저서로는 『와유당문집(臥遊堂文集)』 4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