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남도 영흥 출신. 1920년 4월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간도 용정(龍井)에서 군정서(軍政署)에 가입하고 서창무(徐昌務)·김병구(金炳九)·김덕윤(金德潤) 등과 함께 간도의 화룡현(和龍縣) 황직동(黃稷洞)·용정촌·황도동(黃道洞)·복동(福洞)·회령촌(會寧村)·신흥촌(新興村) 등을 돌면서 많은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1924년 군자금 모금에 나섰다가 일본경찰에 잡혀 9월 청진지방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으며, 1925년 1월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1933년 2월 가출옥하였다. 1935년 다시 용정으로 가서 활동하였다.
1983년에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