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청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후기 호군, 동지밀직사사, 밀직사사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이칭
박송(朴松), 삼청(三靑)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주요 관직
호군|동지밀직사사|밀직사사
관련 사건
조적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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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고려후기 호군, 동지밀직사사, 밀직사사 등을 역임한 무신.
생애 및 활동사항

일명 박송(朴松). 미천한 집안의 출신이었으나 매[鷹]를 잘 길러 충숙왕(忠肅王)에게 총애를 받았으며, 1327년(충숙왕 14)에 호군(護軍)으로서 왕을 심왕당(瀋王黨)의 모함으로부터 보호한 공으로 1등공신이 되어 전토와 노비가 하사되었다.

뒤에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가 되었는데 왕의 총애를 믿고 권세를 부려 당시 세도가인 신청(申靑)·이청(李靑)과 함께 삼청(三靑)이라 불리었다.

1335년(충숙왕 복위 4)에 대호군으로 원나라에 갔다가, 죄를 짓고 원나라에 도망하여 왕을 모함하던 환자(宦者) 티무르부카[帖木兒不哥]를 확인하고 돌아와서 왕에게 알리고, 그를 두호하여 원나라에 도망하게 한 이정(李精)을 곤장쳐 귀양가게 하였다.

1342년(충혜왕 복위 3)에 조적(曺頔)의 난 때 왕을 시종한 공으로 1등공신이 되어 공신당(功臣堂) 벽에 도형(圖形)되었다. 뒤에 밀직사사가 되었는데 처가 족부(族父) 이신계(李臣桂)와 간통하므로 두 사람의 귀를 베고 감찰사에 고하여 이를 국문하게 하였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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