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원(珍原), 자는 언승(彦承), 호는 동계(東溪). 아버지는 임진란 때 군공(軍功)으로 현감에 제수된 박근효(朴根孝)이며, 어머니는 함평이씨(咸平李氏)로 부교위(副校尉) 이유겸(李惟謙)의 딸이다. 일찍이 양친을 잃고 실심한 나머지 학문에 뜻을 두지 아니했다가 30세가 되어 배움이 없음을 부끄럽게 여기고 맏형 박춘수(朴春秀)로부터 처음으로 수학하였고, 36세 때 은봉(隱峯) 안방준(安邦俊)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병자호란 때 안방준의 창의(倡義)에 참가하였으나 남한산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귀향하였다. 이 때 감사 원두표(元斗杓)에게 올린 「상감사원평군원공두표서(上監司原平君元公斗杓書)」의 글은 8조목으로 박춘장의 우국충정을 담고 있다.
1645년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652년(효종 3) 시폐구제를 위한 5조목의 「의상응지소(擬上應旨疏)」를 올렸으나 시행되지 못했다. 만년에 고향 용산(龍山) 아래에 정사를 짓고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으며, 1662년 대기근이 들자 민정을 실상대로 알리고 백성을 구제하는데 앞장서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박춘장은 평소 존군토적(尊君討賊) 존화양이(尊華攘夷)의 사상으로 일관된 생을 살았다. 대표적인 제자로 박진형(朴震亨)·박사헌(朴士憲) 등이 있으며 육현사(六賢祠)에 배향되었다. 저서로는 『동계유고(東溪遺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