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성적(聖績). 박여(朴梠)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박세준(朴世㷪)이고,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박태서(朴泰舒)이며, 어머니는 김만헌(金萬獻)의 딸이다.
음서로 관직에 오르고 봉사(奉事)의 신분으로 1727년(영조 3) 정시 문과(庭試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이 되어 탕평책(蕩平策)의 허점을 경계하는 소를 올렸다.
이후 1732년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다음 해에 홍문관의 부수찬(副修撰)·수찬을 거쳐 1735년에 홍문관의 부교리(副校理)·교리가 되고, 1737년에는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 1740년에 사간, 1741년에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 등 삼사(三司)의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하면서 소론을 공격하는 등 활발한 정치활동을 하였다.
지방관으로는 안릉현감(安陵縣監)을 역임하였다. 1741년에 보덕(輔德)이 되어 장헌세자(莊獻世子)를 보도(輔導: 보필하여 인도함)하였다. 1743년에 승지가 되어 당상관으로 승진하였고, 1750년에 대사간이 되었으나 적절한 탄핵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차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