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발에 탈(가면)을 씌워서 연희하는 예능. 구전에 의하면 경기도 안성 지방의 남사당패가 행한 <꼭두각시놀음>이 변형되어 나타나 주로 중부지방 일원에서 연희되었다고 하며, 또는 유랑예인들에게서 파생되었다고도 한다.
이것이 협률사(協律社)의 공연을 거쳐 광무대(光武臺)와 가설극장(포장굿) 또는 창극단(唱劇團) 등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발탈의 전승계보는 남사당패에서 비롯된 김덕순 · 조갑철 · 박춘재(朴春才) · 오명선 등을 시점으로 하며 김덕순 · 조갑철 · 박춘재계의 발탈은 이동안(李東安)으로 이어지고 오명선계의 발탈은 남형우(南亨祐)로 이어지는데 그가 작고하자 맥이 끊기고 말았다.
이들이 행한 발탈 연희의 변천과정을 살펴보면 처음에는 정애비(허수아비)모양으로 만든 인형(제웅)의 머리 부분을 연희자의 발바닥에 씌우고 팔(정애비의 손)은 노끈으로 연결하여 그 위에 저고리를 입혀 사람모양의 인형이 상반신만 보이게 하고는 양손으로 그 노끈을 잡아당기거나 놓으면서 조종하여 팔이 움직이게 하며 연희를 했다고 한다.
이것이 팔꿈치와 어깨 두 곳에 노끈을 연결시켜 팔이 움직이게 하는 방법으로 발전되었고, 종이탈을 발에 씌워 팔꿈치와 팔목 두 곳에 실패를 장치하여 그 구멍에다가 노끈을 연결해서 팔이 이중으로 움직일 수 있게 하는 방법으로도 발전되었다고 한다.
광무대 시절에 유행한 발탈은 팔에 노끈을 꿰어 조작한 것이 아니라 직접 손에 한삼을 끼고 춤을 추면서 연희하였다고 한다. 남형우가 행한 발탈은 양팔 끝에 노끈을 연결시켜 그 노끈을 위로 올려 대나무에 연결시키고 그 대나무를 양손에 쥐고 조정하며 연희하였다고 한다.
발탈 예능보유자였던 이동안은 대나무만 가지고 조작하는 연희와 손에 한삼을 끼고 춤추면서 하는 두 가지 연희를 다하여 왔는데, 근래에는 손에 한삼을 끼고 하는 것은 손놀음이 불편할 뿐만 아니라 장시간 연희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포장을 치고 그 안에 누워서 발만 관중에게 내놓고 대나무로 양팔을 움직여서 연희하였다.
발탈의 복식과 연희기구를 살펴보면 발탈놀이에는 탈꾼 · 어릿광대 · 여자역 등 세 사람이 등장하는데 발탈의 주역인 탈꾼은 발바닥에 탈을 씌우고 대나무로 만든 팔을 옆으로 벌려 그 위에 저고리와 마고자를 입히며, 조역인 어릿광대는 흰바지저고리에 조끼를 입고 부채를 들며, 여자역은 노랑저고리에 빨간치마를 입는다.
발탈놀이판은 검은 포장으로 된 가로 약 2m, 세로 약 1m 정도의 액자를 사각으로 짜서 뒷면만 터놓고, 탈꾼은 그 속에 숨어서 연희한다.
포장 안에 있는 기구로는 탈꾼이 비스듬히 누워서 연희할 수 있도록 침대가 있고 머리를 받쳐주는 베개와 등을 받쳐주는 등받침, 발목을 받쳐주는 발받침이 있으며, 발만 포장 앞에 내놓을 수 있게 포장 앞부분 중앙부를 가위로 잘라놓는다.
놀이의 형식은 탈꾼이 포장막 안에 누워서 발꿈치를 움직여 탈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과 대나무로 조종하는 팔놀음 등 두 가지의 기본기를 바탕으로 하여 노래와 춤, 그리고 재담을 엮고, <꼭두각시놀음>과 같이 어릿광대(산받이)가 포장막 밖에서 탈꾼을 상대해 주며, 양옆에는 피리 · 젓대 · 해금 · 북 · 장구(때로는 꽹과리) 등 삼현육각(三絃六角)이 반주를 해준다.
탈과 팔의 연희에 있어서 발탈은 발목을 상하나 좌우로 틀어 움직이는 것, 제자리에서 떠는 것, 순간적으로 발을 끄덕거리는 것이 있으며, 팔의 연희는 옆으로 펴는 것, 위로 올리는 것, 밑으로 내리는 것 등이 있어 가지각색의 표정을 나타낸다.
또한 발탈의 춤은 어깨춤과 좌우치기, 그리고 목놀이 등 세 가지의 춤사위로 연희하는데 표출방법은 발의 움직임으로 하는 경우, 대나무로 조작하는 경우, 손으로 춤추는 경우가 있다.
노래의 연희는 각 도의 잡가와 고사창, 민요 등을 부르며, 재담의 연희는 주인공인 탈꾼이 조기장사역을 하면서 어릿광대와 잠시 얼굴을 비친 여자역 등과 다음과 같은 재담을 한다.
처음에는 피라미 · 조기 · 치리 · 비둘기 · 까투리 · 맹꽁이 등을 먹고, 소 · 말 · 돼지 · 닭 · 굼벵이를 잡아먹고, 네 불알도 떼어먹는다는 잡아먹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다음에는 조기를 헤아리는 재담이 나온 뒤 곰의 쓸개, 노루, 사슴, 불알이 두 개인데 너 하나 나 하나 먹는다는 등 약 먹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러한 재담은 주로 서민들의 해학성 짙은 의지를 재미있게 풀어주는 것으로, 탈꾼과 어릿광대와의 대담 중에 “이자식 저자식, 이놈 저놈” 등의 욕지거리도 익살스럽게만 들린다. 그리고 놀이꾼이 간혹 상대가 말을 안 들어주면 관객에게 응원을 청하는 행위도 나온다.
이러한 발탈의 연희적 특징은 줄인형극의 조정형식과 장대인형극의 조정형식을 갖춘 인형극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여기에 가면극으로서의 성격도 가미되어 있다.
또한 발탈은 규모가 작은 판놀음의 하나로 광대들의 예능이라 할 수 있으며, 발탈꾼과 어릿광대의 어울림에서 전승되는 재담을 제외하고는 거의 현장성이 우세하여 즉흥성이 짙은 연희라 할 수 있다.
발탈놀이의 연희대본을 분석해보면 발탈은 동작을 포함한 춤과 노래, 그리고 재담으로 이루어지는 가무극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 원초적 기예의 요소는 잔재주나 장난기, 거기에다 사회를 보는 비판력과 관찰력이 예리하게 반영되어 있어 그 예능은 일차적으로는 풍자적이고 외설스럽고 해학적이며, 소박하고 누추하기까지 하여 인간성을 숨김없이 표출하고 서민들의 애환을 꾸밈없이 담고 있다는 데서 여타의 각 지역 탈놀이의 내재적 성격과 일치하고 있다.
발탈놀이는 1983년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되었고 1998년 현재 발탈의 예능보유자로 박해일(朴海一)이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