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이동백(李東白, 1777~1853), 편자는 이운호이다. 저자의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자회(子晦), 호는 방산(防山)이다.
1926년 이동백의 증손 이운호(李運浩)가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이훈호(李熏浩)의 서문이 있다.
권1·2에 시 23수, 만사(輓詞) 12수, 서(書) 7편, 제문(祭文) 2편, 상량문(上樑文) 2편, 권3에 동정일록(東征日錄) 1편, 부록으로 김인섭(金麟燮)이 지은 묘표(墓表) 1편이 수록되어 있다. 끝에 이구영(李求永)의 「청탄집(淸灘集)」이 합철되어 있다.
시의 「하양로중작(河陽路中作)」은 하양으로 가는 도중에 느낀 감회를 읊은 것이다. 「과동해(過東海)」와 「과동해음(過東海吟)」은 동해를 지나면서 읊은 것으로, 자연에 비해 인간은 시공간적으로 얼마나 초라한 존재인가를 표현한 시이다. 「충효당여제종창수(忠孝堂與諸宗唱酬)」는 조상의 충효를 기념하기 위해 지은 충효당에 자손들이 모여서 맹세한 내용을 담은 것이다.
서(書)인 「여영해첨종(與寧海僉宗)」·「여이천종중(與利川宗中)」·「답함안제종(答咸安諸宗)」은 모두 문사를 의논하는 내용이다. 조상의 충효를 생각해 어지러워가는 국제 정세에 슬기롭게 대처하고, 국력을 기르는 데 앞장설 것을 촉구하였다. 「여박지계지열(與朴芝溪旨說)」은 서원에서 시행되는 의식의 절차와 결정이 옳지 못하다는 의견을 적은 글이다.
「동정일록」은 1830년(순조 30) 2월에 진주를 출발해 모곡(某谷)·안인(安仁)·영산·현풍·선산·군위·청송을 거쳐 영해(寧海: 현,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에서 선조인 이현일(李玄逸)의 증시연(贈諡宴)에 참석하기까지 중간에 보고들은 일을 일기체로 쓴 것이다. 당시의 향토·풍속·인물 등의 연구에 참고 자료가 된다. 이 밖에 천연두의 만연을 방지하기 위해 두신에게 제사를 지낸 「제두신문(祭痘神文)」이 있다.
갈암(葛庵) 이현일의 후손인 저자의 문집을 연구함으로써 이현일이 후대에 끼친 영향의 한 단면과 경남 지역 풍속을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