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의 사(司)에 각각 두개의 방(房)을 갖추었는데, 이들 방을 책임지는 담당관을 일컫던 칭호이다.
형조의 분사(分司)는 상복사(詳覆司)·고율사(考律司)·장금사(掌禁司)·장례사(掌隷司)로 이들 각 사의 해당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사마다 두개의 방을 분설하여 모두 8개의 방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들 각 방은 낭관(郎官)인 정랑(正郎)·좌랑(佐郎)이 책임자로 있었는데, 1430년(세종 12)에 육조 중 다른 조(曹)보다 낭관을 1인씩 더 두어 각 사에 2인씩 8인이 되었다. 이러한 형조의 분방제도(分房制度)는 조선 초기에 형성된 것으로 생각된다.
성종대에도 방장에 대한 죄과를 다스린 내용이 있는데 이것은 지방의 육방(六房)이 아닌 중앙의 그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분방체제로 조직된 각 방은 경외(京外)의 중죄(重罪)복심과 외노비(外奴婢)·경노비(京奴婢)의 사무를 분담하였고, 또한 각 관사(官司)로부터 이관되는 문서와 각 도에서 보내오는 장첩(狀牒)을 받아 이를 보호, 관리하는 조직으로 활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