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일사(一簑). 평안북도 정주출생. 1926년 오산중학교(五山中學校)를 거쳐, 1934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조선어학 및 문학과를 졸업하였다. 동대학원에 입학하여 1938년 9월까지 국어학을 연구하였는데, 그 사이인 1936년 11월부터 1937년 7월까지 동경제국대학 대학원에서 언어학을 연구하였다.
1945년 10월, 광복 후 새출발한 경성대학의 예과 교수를 거쳐 1946년 10월에 새로 창설된 국립서울대학교의 문리과대학 교수로, 1951년 12월에는 이 대학의 학장에 취임하였다.
이 밖에 한글학회 이사, 진단학회 위원, 서지학회 회장, 우리어문학회 위원, 한국산악회 학술조사위원, 조선일보사 임원 등을 역임하였다.
그의 학문은 국어사관계자료의 정리와 해석, 국어학사연구, 방언조사, 속담집 간행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있다. 「『훈몽자회』고(訓蒙字會攷)」(『동방학지』 1, 1954)와 「『계림유사(鷄林類事)』 연구」(『동방학지』 2, 1955)는 유고로서 발표된 것이었으나, 그의 성실하고도 정교하고 치밀한 실증적인 학문연구방법을 보인 논문이었다.
「『훈몽자회』고」는 국어사연구상 귀중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훈몽자회≫에 관하여 최초로 상세한 해제를 꾀한 업적으로서, 특히 저자 최세진(崔世珍)의 생애와 업적을 자세하게 밝혔으며, 「『계림유사』 연구」는 서지해제와 더불어 중국자음을 이용한 '『계림유사』 어석(語釋)'의 방법을 제시한 선구적 업적이었다.
이 밖에 훈민정음연구, 고어와 방언연구, 도서해제, 속담과 민속의 연구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훈민정음에 관한 연구는 1935년과 1940년, 그리고 1946년까지 세 차례에 걸친 해제를 비롯하여, 「훈민정음사략(訓民正音史略)」(1946), 「훈민정음과 훈몽자회와의 비교」(1947) 등과 같은 연구로 ≪훈민정음≫ 해례본의 내용과 훈민정음의 보급 및 『훈민정음통사 訓民正音通史』 → 『훈민정음통사(訓民正音通史)』 변천 등을 고찰하고, 1948년에 이들 연구를 종합하여 ≪훈민정음통사 訓民正音通史≫를 발간하였다.
고어에 관한 연구는 <고서에서 보는 언어변천고>, 「『조선관역어(朝鮮館譯語)』 해독」(유고), <향약명연구>(유고). <용비어천가강의>. <순경음연구>(유고) 등이 있고, 방언연구로는 <제주도의 방언>. <방위의 이름> 등이 있는데, 고어연구로 가장 힘들인 업적은 우리나라 최초로 『고어재료사전(古語材料辭典)』(전집 1946, 후집 1947)을 발간한 일이었다.
도서해제로는 <한글연구도서해제>, 「『유합(類合)』의 해제」, 「노걸대언해(老乞大諺解)」, 「이문집람(吏文輯覽)」, 「『악학궤범(樂學軌範)』에 대하여」 등 여러 연구가 있는데, 「『사성통해(四聲通解)』 연구」(유고)는 ≪사성통해≫의 편찬경위 및 각종 운서와의 관계, 『사성통고(四聲通攷)』와의 관계 등을 자세하게 밝혀놓은 훌륭한 연구업적이었다. 속담과 민속연구의 대표적인 업적으로는 ≪세시풍속집≫이 있으며, 이밖에 ≪조선의 속담≫·≪농촌의 풍속≫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