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한덕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 일제강점기
대한제국기 농상공부 광산국장, 남양군수 등을 역임한 관료.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온양(溫陽)
  • 사망 연도1913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46년(헌종 12)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상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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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대한제국기 농상공부 광산국장, 남양군수 등을 역임한 관료.

개설

본관 온양(溫陽). 자(字)는 성함(聖咸). 생부는 봉사(奉事) 방윤행(方允行)이고, 양부는 전의감주부(典醫監主簿) 방대용(方大鏞)이다. 어머니는 파평조씨 조익연(趙益淵)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64년(고종 1) 증광시(增廣試) 역과에 급제하였다. 1896년 창립된 독립협회의 회원으로 그 이듬해 8월부터 34회에 걸친 토론회에 여러 차례 대표토론자로서 토론회를 지도하였다. 1898년에는 독립협회의 임시 서리 부회장에 선출되었고, 8월 임원개선 때에는 평위원이 되었다.

이해 10월 중추원 1등의관으로 칙임관4등이 주어졌고, 만민공동회에 참여, 활동하던 중 11월 농상공부 광산국장으로 있으면서 수구파에 의하여 13인의 독립협회 간부와 함께 체포되었다.

그러나 독립협회 회원들의 석방요구 시위로 곧 석방되어 만민공동회의 편집부장급 간부가 되었고, 독립협회가 복설된 이후에는 총대위원(總代委員) 및 대표위원을 역임하였다. 1907년 남양군수(南陽郡守)를 지냈다.

참고문헌

  • - 『고종실록(高宗實錄)』

  • - 『대한계년사(大韓季年史)』

  • - 『독립협회연구(獨立協會硏究)』(신용하, 일조각, 1976)

  • - 『독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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