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온양(溫陽). 자(字)는 성함(聖咸). 생부는 봉사(奉事) 방윤행(方允行)이고, 양부는 전의감주부(典醫監主簿) 방대용(方大鏞)이다. 어머니는 파평조씨 조익연(趙益淵)의 딸이다.
1864년(고종 1) 증광시(增廣試) 역과에 급제하였다. 1896년 창립된 독립협회의 회원으로 그 이듬해 8월부터 34회에 걸친 토론회에 여러 차례 대표토론자로서 토론회를 지도하였다. 1898년에는 독립협회의 임시 서리 부회장에 선출되었고, 8월 임원개선 때에는 평위원이 되었다.
이해 10월 중추원 1등의관으로 칙임관4등이 주어졌고, 만민공동회에 참여, 활동하던 중 11월 농상공부 광산국장으로 있으면서 수구파에 의하여 13인의 독립협회 간부와 함께 체포되었다.
그러나 독립협회 회원들의 석방요구 시위로 곧 석방되어 만민공동회의 편집부장급 간부가 되었고, 독립협회가 복설된 이후에는 총대위원(總代委員) 및 대표위원을 역임하였다. 1907년 남양군수(南陽郡守)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