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룡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등암집』 등을 저술한 학자.
이칭
  • 등암(藤庵)
  • 자장(子章)
인물/전통 인물
  • 본관성주(星州)
  • 사망 연도1655년(효종 6)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사복시정
  • 출생 연도1574년(선조 7)
  • 출생지성주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주웅영 (경북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등암선생문집 미디어 정보

등암선생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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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등암집』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자장(子章), 호는 등암(藤庵). 성주 출신. 할아버지는 사재감정(司宰監正) 배덕문(裵德文)이고, 아버지는 영남수군절도사 배설(裵楔)이며, 어머니는 자야성충순위(藉冶城忠順衛) 야성송씨(冶城宋氏)로 송원(宋源)의 딸이다. 부인은 사재감정 신인서(愼仁恕)의 딸이다. 정구(鄭逑)와 장현광(張顯光)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여러 차례 공거문(公車文: 應試·應製·疏章 등의 詩文)이 뽑혔으나 아버지가 비명으로 죽자 과거에 응하지 않고 어머니를 봉양했으며, 동생을 열심히 가르쳐 태학에 올렸으나 일찍이 죽자 더욱더 인사(人事)에 뜻을 잃고 몇 번 천거되었음에도 거절하였다.

또한 끝까지 자신을 추천하는 자 없이 죽기를 원하였다. 1631년(인조 9) 권대진(權大進) 등이 영남의 최현(崔睍)·승려 천식(天植)과 함께 일으키려고 했던 모역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금부도사에게 붙잡혀 추국(推鞫: 심문)을 당하기도 하였다.

1637년 천거로 선교랑의 벼슬이 내렸으나 받지 않고 임종 때 벼슬을 쓰지 말고 ‘숭정처사(崇禎處士)’라고만 쓰라 하였다 한다. 1774년(영조 50) 통훈대부(通訓大夫) 사복시정(司僕寺正)에 증직되고, 1785년(정조 9) 유림들이 세운 성주의 도천사(道川祠)에 배향되었다.

저서로는 『등암집(藤庵集)』이 있다.

참고문헌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기언별집(記言別集)』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대동야승(大東野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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