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배행농(裵倖儂). 출생지는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1893년 출생 당시에는 경상도 마산).
1919년 11월 만주 길림성(吉林省)에서 김원봉(金元鳳) 등 동지 12명과 의열단을 조직하여 항일무력투쟁을 전개할 것을 결의하고, 1차 행동목표로 밀양경찰서 폭파계획을 추진하였다.
1920년 3월 국내로 폭탄을 반입하다가 동지 곽재기(郭在驥) 등은 붙잡혔으나, 폭탄을 받을 사람인 배중세와 김병환(金鉼煥) 등은 붙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1925년 이른바 의열단원양건호사건(義烈團員梁健浩事件)에 연루되어 검거되었는데, 검거된 이유는 양건호(본명 李鍾巖)가 1925년 9월 입국하여 군자금을 모금하던 중 경상북도 달성군(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있는 이기양(李起陽)의 산장에 숨어 있도록 알선한 때문이었다.
대구형무소에서 1년간 복역한 후에도 항일투쟁을 계속하다가 1943년 1월 예비검속으로 대구형무소에 구금되어 이듬해 1월 옥사하였다.
1963년 대통령 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