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수원(水原). 호는 여강(如岡). 대구시 중구 서야동에서 백영기(白英基)와 박복이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1928년 4월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932년 1월 제4학년에서 자퇴하였다. 그 뒤 1936년 4월 일본 교토 성봉중학(聖峰中學) 4학년에 다시 편입하였다.
1941년 3월 일본 미야자키[宮崎]고등농림학교 농학과를 졸업한 후 수원농업연구소 곤충부 조수를 시작으로 1942년 1월 서울 배재중학교 교사, 1944년 9월 대구 남산여자고등학교 교사, 1945년 10월 수원농과대학 조교수를 거쳐 1946년 1월 수원중앙농업기술원 병리곤충부 기사가 되었다.
1946년 5월대구 농과대학교수로 근무하던 중 1948년 10월 결핵으로 1957년 8월까지 약 10년간의 요양생활을 한 뒤 다시 1957년 1월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과학교육과의 전임강사를 비롯하여 경북대학교 사범대학장, 경북대학교 교수협의회장, 경북대학교 산업개발연구소 소장, 경북대학교 교육대학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64년 경북대학교에서 이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포상은 1965년 경상북도 자연과학부문 문화상, 1979년 하은생물학상, 1972년 국민훈장 동백장 등을 수상하였으며, 그 외에도 경상북도문화재위원회 부위원장, 한국문화재보호협의회 경상북도 운영위원, 한국자연보존연구회 경상북도지부 부지부장, 경북대학교 명예교수를 거쳐 1985년 9월 한국거미연구소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한국거미학 연구에 열정을 바쳤다.
한국의 동물분류학 분야의 연구와 후학 양성에 일생을 바치며, 거미학의 세계적인 학자로서 업적을 쌓았다. 저서는 『자연과학개론』·『일반생물학』 등이 있고, 논문은 1935년「ヤナキハムツ班文の異常」, 1996년「한국산 미진거미속(Dipoena)의 분류학적 연구」에까지 총 150여 편의 논문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