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대(明代)의 『금고기관(今古奇觀)』 중의 「왕교란백년장한(王嬌鸞百年長恨)」을 번역한 작품이다. 구활자본으로 1926년경성서적조합(京城書籍組合) 발행의 「ᄇᆡᆨ년한」(120면)이 있다. 작가 겸 발행인이 홍순필(洪淳泌)로 되어 있으나 원저자는 아니다.
명나라 천순(天順) 초년에 왕충(王忠)이 왕표(王彪)라는 아들과 교란(嬌鸞)·교봉(嬌鳳)이라는 두 딸을 두었다. 왕충이 상처를 하여 주씨부인(周氏夫人)을 다시 맞아들이고 교란을 주씨부인의 의형 조씨부인(曺氏夫人)과 함께 있게 하였다.
하루는 교란이 조씨부인의 시녀 명하(明霞)와 함께 봄날을 감상하다가 소주 오강현 학궁사교(學宮司敎)의 아들인 주정장(周廷章)에게 눈길을 보내게 되었다. 어느 날, 교란이 떨어뜨린 수건을 주정장이 주운 것이 인연이 되어 손구(孫九)를 사이에 넣고 사랑을 맺는다. 그러나 충공의 경계로 주정장을 만나지 못하게 된 교란이 상사병으로 눕게 되자, 주정장은 의술에 조예가 있음을 빌미로 교란을 더욱 가까이 하게 된다. 조씨부인의 이해로 두 사람은 다시 만나 운우의 정을 나눈다.
그 뒤 주사교(周司敎)가 고향 오강(吳江)으로 돌아가자, 주정장과 교란은 이별을 하게 되고, 주정장은 부모의 강한 권유로 다른 여인과 혼인하게 된다. 이 사실을 안 교란이 손구를 통하여 주정장의 의사를 묻자, 그는 이전의 손수건과 혼약서를 돌려주며 배신해 버린다.
이에 충격을 받은 교란은 자신의 경박한 과거의 맹세를 후회하며 장한가(長恨歌)를 지어 한탄한다. 주정장과 화답하던 글과 혼약서에 절명시(絶命詩)를 더하여 오강현으로 보내고 되돌려 받은 손수건으로 목을 매어 자결하고 만다. 오강현 대윤이 교란이 보낸 글을 받아보고는 주정장을 처형하고 마을사람들은 이 일에 분노하여 경계로 삼았다.
이 작품은 번역물로, 줄거리는 같지만 세부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상당한 윤색이 가해져 있다. 우리 고전소설의 말기작품인 「채봉감별곡(彩鳳感別曲)」도 「왕교란백년장한」의 영향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