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백련사라는 이름은 신라 문무왕 때 백련선사(白蓮禪師)가 숨어 살던 곳으로 여기에 백련이 솟아 나왔다 하여 백련암이라 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져오며, 830년(흥덕왕 5)에 무염국사(無染國師)가 백련사를 창건하였다는 구전도 있지만, 이에 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백련사에 관계된 기록은, 중선 중기 광주목사(光州牧使)를 지냈으며, 1552년(명종 7)에 덕유산을 기행한 임훈(林薰)의 《갈천집 葛川集》에 〈덕유산향적봉기 德裕山香積峰記〉가 있다.
여기에 보면 성불공자(成佛功者) 9천명이 살았다고 하여 구천둔(九千屯)이라고 안내한 스님 웅(雄)이 설명했다는 구천동(九千洞)에는 14개의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이 중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백련사는 구천동 계곡에 있다.
천왕문 앞 왼쪽에는 1609년(광해군 1)에 세워진 정관당부도(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1982년 지정)가 있으며, 일주문 안쪽에도 1784년(정조 8)에 세워진 매월당부도(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가 있다.
이제까지 이 부도는 매월당김시습의 부도로 알려져왔으나, 실제로는 또다른 매월당인 설흔(雪欣)스님의 부도로 밝혀 졌다. 백련사는 1960년대 후반 본격적인 중창불사를 시작하여, 현재는 원통전 · 명부전 · 보제루 · 천왕문 · 일주문 · 범종각을 복원하였고, 대웅전의 삼존불과 후불탱화를 봉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