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215㎝, 너비 104㎝, 두께 38㎝. 1984년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1759년(영조 35)에 건립되었으며, 비문은 1658년(효종 9)에 김석주(金錫胄)가 지은 것이다.
비문에 보면, “살펴보니 본래의 비에 의하면 ‘사찰을 창건한 분은 조구(祖求) 스님이고 비문의 글을 부탁했던 분은 처능(處能) 스님이다. 이것은 명능(明能) 스님의 뜻을 받아 한 일이었다.’고 되어 있다. ‘능’자 이름을 가진 두 분 스님이 하고자 했던 일이었다. 조구 스님은 고려 태조 때의 고승이다.
옛 기록에는 당나라 정관(貞觀) 연간에 자장율사가 사찰을 창건하였으며, 역시 당나라 건부(乾符) 연간에 도선 대사가 창건했고, 세 번째 중창이 곧 조구 스님의 일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 정확한 내용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내용을 검토해보면 안심사는 신라의 자장율사가 창건했다는 내용과, 조구 스님이 창건했다는 내용의 2가지 설이 제기되고 있다.
사적비 전반부의 김석주(金錫胄)가 편찬한 비문(1658)에는 조구 스님이 창건주로 되어 있고, 사적비 후반부, 즉 100년 후 비가 건립될 당시(1759)에는 자장율사를 창건주로 기록되어 있다.
100년의 시차를 두고 조구에서 자장으로 창건주가 바뀌었다. 후반부의 비문을 작성한 글의 지은이가 김석주가 편찬할 당시의 ‘옛 기록’에 의존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지만, 그것이 과연 어떤 기록인지는 알 수 없는 상태이다.
이 사적비 후반부의 내용으로 인해 현재 사찰안내 자료에는 창건주를 자장율사로 기록하고 있다. 비문의 내용을 종합하면 안심사는 638년(백제 무왕 39)에 자장법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그 뒤 875년(헌강왕 원년)에 도선 국사에 의해 중창되었으며, 신라 말 고려 초기에 조구 화상에 의해 재중창되었다.
그 후 고려를 거쳐 1601년(선조 34) 수천화상(守天和尙)에 의해 중창되었으며, 1701년(숙종39)에 5번째로 중창되었다고 한다. 안심사비문은 당시 안심사 주지 처능의 부탁을 받아 우의정 김석주가 지었으며, 글씨는 이조판서를 지낸 홍계희(洪啓禧)가 썼고, ‘大屯山安心寺碑(대둔산안심사비)’라는 전액(篆額)은 영의정 유척기(兪拓基)가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