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포(藍浦). 자는 무구(無咎). 호는 남양(南陽)·참선거사(參禪居士). 할아버지는 태복경 백사청(白司淸)이며, 아버지는 판비서성사 한림학사 지제고(判祕書省事翰林學士知制誥)백광신(白光臣)이다.
1198년(신종 1)에 국자감시(國子監試)에 합격하고 그 해 과거에 급제하였다. 1206년(희종 2) 내시에 임명되어 그 뒤 19년간 곧게 일을 처리하여 이름이 났다. 이 때 조계종에서 인재를 뽑는 일을 맡았는데 뽑은 인물로 명승(名僧)이 많았다.
1216년(고종 3)에 거란유종(契丹遺種)이 침입하여 피해가 많으므로 소복사(蘇復使)가 되어 서해도(西海道: 黃海道)에 나가 궁핍한 백성들을 구제하였다. 벼슬이 구복원판관(句覆院判官)·비서교서랑(祕書校書郎)·위위시주부(衛尉寺主簿)·소부시승(少府寺丞)을 거쳐 합문지후(閤門祗候)에 이르렀다.
다시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郎)이 된 뒤 선주방어부사(宣州防禦副使)에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부임하지 못하였고, 다시 경산부부사(京山府副使)가 되었다가 얼마 안 되어 병으로 죽었다. 말년에 선학(禪學)을 연구하였다. 저서로 『남양시집(南陽詩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