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현복(賢復), 호는 온당(溫堂). 평안북도 태천 출신.
1895년(고종 32) 명성황후 민씨(明成皇后閔氏)가 일제에 의해 시해당하자 의병장 유인석(柳麟錫)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항쟁하였다.
1910년 국권이 침탈되자 남만주로 망명하여 봉천성(奉天省)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에서 조병준(趙秉準) 등과 함께 관전현(寬甸縣)과 환인현(桓仁縣)을 근거로 농무계(農務契)와 향약계(鄕約契)를 조직하여 애국청년들에게 군사훈련을 시키는 한편, 항일의식을 심어주었다.
3·1운동 후 조맹선(趙孟善) 등과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을 조직하여 부총재로서 만주 각 현에 독립지단을 조직, 강화하였다.
또한, 일제의 주구기관인 보민회(保民會)·일민단(日民團)·강립단(强立團) 등을 숙청하는 등의 항일활동을 전개하였으며, 박장호(朴長浩)·전덕원(全德元)·이웅해(李雄海)·김평식(金平植) 등과 대한독립단이 기원독립단(紀元獨立團)과 민국독립단(民國獨立團)으로 나뉠 때 기원독립단을 이끌었다.
1920년 일본군이 관전현 향로구(香爐溝)에 있는 우리 청년단을 습격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청산구(靑山溝)에 갔다가 일본군에게 잡혀 환인현에서 총살당하여 순국하였다. 그 뒤 장남 백인해(白仁海), 차남 백인제(白仁濟)도 순국하였다.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