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14년 서간도(西間島)의 부민단(扶民團)과 신흥학우단(新興學友團)이 독립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만든 군영(軍營).
개설
기능과 역할
그리고 각 건물을 장주실(莊主室) · 훈독실(訓督室) · 총무실 · 의무실 · 수품실 · 농감실(農監室) · 교도실 · 강당 · 중대장실 · 소대장실 · 치료실 · 식당 · 취사실 · 창고 등과 각 부대의 병사실 등으로 나누었다. 아울러 신흥중학의 제1회부터 제4회 졸업생 일부와 각 분교, 노동강습소 등에서 훈련된 군인 385명을 입영시켜 부대편성을 완료하는 동시에 본격적인 군사훈련에 돌입하였다.
또한 임원진도 선출하였는데, 장주(莊主) 김동삼(金東三), 훈독(訓督) 양규열(梁圭烈), 총무 김정제(金定濟), 의감(醫監) 김환(金煥), 경리 김자순(金子淳), 수품(需品) 곽문(郭文), 의무 정선백(鄭善伯), 농감(農監) 백광운(白狂雲), 교관 허식(許湜) · 김영윤(金永胤) · 김동식(金東植) · 강보형(姜保衡), 교도대장 이근호(李根浩), 제1중대장 안상목(安相睦), 제2중대장 박상훈(朴相勳), 제3중대장 김경달(金敬達) 등이었다.
이들 가운데서 군사훈련과 교육은 훈독인 양규열의 감독 밑에 시행되었으며, 일반 작업과 농사는 장주인 김동삼의 지도 밑에 농감인 백광운이 지휘를 하였다. 그리고 이 농장의 간부들과 구성원들은 독립운동기지 건설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러나 기후와 풍토가 맞지 않고 음식물까지 부족해 구성원들이 속속 병에 걸리기 시작하였다. 그밖에도 신경쇠약 · 불면증 · 열병 · 위장병 · 심장병 · 천식 · 결핵 등으로 고생하는 이들이 잇달아 발생하였다. 그리하여 치료차, 또는 무작정 떠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고, 그 결과 병사(兵舍)가 비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부민단 간부들은, 3·1운동 후 부민단이 해체되고 한족회(韓族會)가 조직되는 과정에서 총회를 열고 이 농장을 해체하기로 결정, 문을 닫았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사(韓國獨立史)』(김승학, 독립문화사, 1965)
- 「만주지역신흥무관학교(滿洲地域新興武官學校)」(박훤, 『만주한인민족운동사연구(滿洲韓人民族運動史硏究)』, 일조각, 1991)
-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원병상, 『독립군전투사자료집』 10, 1976)
- 『백서농장사(白西農莊史)』(元秉常)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