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북도 정주 출신. 1919년 3·1운동 때 강계(江界)에서 만세시위운동에 참가하고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졸업하였다. 1920년 3월 군자금 모금을 목표로 정주에 잠입하여 활동하였다.
그해 9월 모금된 자금을 만주로 밀송한 뒤 다시 만주 관전현(寬甸縣)으로 가던 도중 친구였던 김규진(金奎珍)의 밀고로 일본경찰에 잡혔다. 출옥 후 중국으로 다시 망명하여 광저우[廣州]를 거쳐 상해에 돌아와서 강창제(姜昌濟)의 알선으로 흥사단과 한국독립당에 입당하여 활동하였다.
그 뒤 대련(大連)에서 다시 일본경찰에 잡혀 여순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1977년 건국포장을 받았고, 1990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