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필은 1803년 전후 이옥이 남양도호부에 거주하면서 견문한 일상생활, 동물과 식물, 농업 관련 내용을 기록한 잡록 성격의 책이다. 이옥은 남양도호부와 한성부를 왕래하며 생활하다가 경상도 삼가현 충군에서 풀려난 이후 남양도호부에 정착하였다. 정착한 이후 1803년 전후 시기에 자신의 견문과 여러 서적의 인용을 바탕으로 일상생활, 동물과 식물, 농업 관련 내용을 백과전서 성격으로 정리하였다. 총 10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편에 자신의 경험, 민간의 전언, 여러 서적의 인용 등을 고증학적인 태도로 분석 정리하였다.
저자인 이옥(李鈺: 1760~1815)은 전주이씨 효령대군파로 남양도호부(南陽都護府)에서 1760년(영조 36) 출생하였다.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를 따라 주로 서울에 거주하며 외가가 있는 남양에 주1를 두고 서울과 남양을 왕래하며 지냈다.
이옥은 성균관 유생 시절 정조의 문체반정(文體反正) 주요 대상자가 되어 혹독한 고초를 겪었다. 1792년(정조 16) 성균관 유생일 때 소설식 문체의 응제문(應製文)을 올려 정조에게 문체를 고치라는 엄명을 받았다. 이른바 정조의 문체반정의 직접적인 대상이 되었다. 다른 문체반정의 대상자들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고 반성문 제출 등으로 고난을 벗어났지만, 이옥은 경상도 삼가현에 충군(充軍)되어 1795년(정조 19)에서 1800년(정조 24) 초까지 어려움을 겪었다. 사면을 받아 충군에서 풀려난 뒤에는 서울의 집을 처분하고 남양으로 완전히 낙향하여 ‘백운사(白雲舍)’ 혹은 ‘백운헌(白雲軒)’이라 이름 붙인 남양의 집에서 글쓰기에 전념하다 1815년(순조 15)에 사망하였다.
표제는 ‘백운필(白雲筆)’이고, 필사본이며, 총 105면이다.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옥은 1803년(순조 3) 5월에 『백운필』 「소서(小序)」를 작성하였는데, 전후 시기에 『백운필』을 편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옥은 자신이 한양과 남양 지역에서 견문하고 경험한 내용과 중국과 조선의 서적 등에서 인용한 부분 등을 엮어서 『백운필』을 편찬하였다.
『백운필』은 총 10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담조(談鳥), 담어(談魚), 담수(談獸), 담충(談蟲), 담화(談花), 담곡(談穀), 담과(談果), 담채(談菜), 담목(談木), 담초(談艸) 등이다. 각 편은 일상적인 지식, 실용적인 정보, 『본초강목(本草綱目)』, 『이아익(爾雅翼)』 등에서 인용한 구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옥은 『백운필』 「소서(小序)」에서 일상(日常)에서 눈여겨보면서 기록하고 정리한 것이라고 언급한다. 하지만 남양도호부 송산에서 이옥이 누리던 일상생활이 바로 『백운필』의 주요한 내용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백운필』의 10편은 평소의 관심으로 정리한 지식 정보를 남양도호부에서의 일상생활이라는 틀 속에 정리한 것이었다.
『백운필』의 내용은 백과사전적인 형식 속에서 몇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자신의 경험과 민간의 전언을 중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고, 백성들의 의식과 생활에 대한 견문도 서술하고 있다. 특히 당시 남양도호부 등 여러 지역의 농촌 생활의 일상, 농업기술의 특징, 그리고 농업생산의 특색 등을 기술하고 있다.
『백운필』은 남양도호부와 여러 지역의 동식물 관련 정보, 농촌 생활의 일상을 정리한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새, 물고기, 짐승, 벌레, 꽃, 곡식, 과일, 채소, 나무, 풀 등에 대한 당대의 백과사전적 지식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당시 사족과 농민의 주변 환경, 농촌 생활 등에 대한 태도와 인식, 지향 등도 찾아볼 수 있는 자료이다. 또한 이옥을 비롯한 당대의 글쓰기, 저작 방식과 태도, 심미적 관심과 표현 등 다양한 문학적 분석이 필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