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이후 2016년까지 1차에서 5차에 걸친 시굴 ·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1차 시굴 · 발굴 조사에서 괴성(魁星) 및 남쪽 제방을 일부 조사한 이후, 계속된 시굴 · 발굴 조사를 통해 제방, 주1, 수문(水門), 괴성 등이 확인되었다.
15세기에서 18세기 사이에 축조된 저수지가 ‘방축수(防築藪)’라 불리다가 1795년(정조 19)에 ‘만년제(萬年堤)’로 개칭되었다. 정조 재위 시기 화성(華城) 성역(城役), 주2 정비 과정에서 1798년(정조 22) 새롭게 제방 축조, 내부 준설 공사 등을 수행하였다. 『일성록(日省錄)』에 따르면 1798년 2월부터 4월까지 주3 1만 8000여 명을 동원해서 총둘레가 583 보(步), 대략 700m에 달하는 규모의 저수지로 만들었다. 정조가 내하전 6,000냥을 자금으로 내려보내 공사 재원으로 활용하였다.
만년제는 현륭원 입구[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 152번지 일대]에 축조되어 활용한 제언(堤堰)이다. 1795년 이전까지 방축수라 불리던 제언이 만년제로 개칭되었고, 이후 1798년 대대적인 소착공사(疏鑿工事)를 통해 새롭게 제방 등을 수축하여 저수지의 면모를 일신하였다.
1798년 개축 공사에서 만년제는 동서남북 사방으로 제방을 쌓고 둑 위에 버드나무와 떼를 입히거나 소나무를 심었다. 이를 통해 자연제방을 활용하면서 제방 내외의 압력에 대응할 수 있게 하였다. 『일성록』 기사에 따르면 동쪽 제방의 길이는 185보, 너비는 15보, 높이는 주4이다. 서쪽 제방의 길이는 145보, 너비는 30보, 높이는 8척이다. 남쪽 제방의 길이는 151보, 너비는 13보, 높이는 9척이다. 북쪽 제방의 길이는 102보, 너비는 10보, 높이는 8척이다. 한편 19세기 전반의 『화성지(華城志)』와 『화성지』 기록을 그대로 옮겨적은 『수원부읍지(水原郡邑誌)』에 따르면, 만년제의 규모는 길이 460척, 너비 370척, 제방 높이 7척, 제방 너비 34척이다.
만년제 중앙에 괴성이라는 이름의 인공섬이 조성되었다. 괴성은 천원(天圓) 지방(地方)을 뜻하는 상징적 의미와 물의 순환을 통한 수질 정화의 기능을 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저수지를 네모꼴로 조성한 것이 땅이 모난 것을 상징하고, 괴성을 둥글게 만들어 하늘이 둥근 것을 본딴 것이었다. 『일성록』에 따르면 괴성은 지대(地臺)와 석축(石築) 상층을 각각 81보 규모로 축조되었다.
또한, 만년제에는 수문과 주5이 설치되어 제언 아래 경작지에 물을 대는 수량을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어 관개의 이로움을 누릴 수 있게 하였다. 만년제의 수문은 주6에 있었는데, 상수문과 하수문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제언 아래 몽리답(蒙利畓)이 최대 60여 석락에 달할 정도였다.
만년제는 현륭원 물길 입구에 위치하여 현륭원 아래 백성의 논밭에 물을 대기 위한 수리 시설로 18세기 말에 개축되었다. 정조 대 후반 수리 정책의 전개 과정, 현륭원 조성과 정비 사업 등을 검토하는 데 중요한 유적이다. 그리고 여러 차례에 걸친 시굴 · 발굴 조사를 통해 내부 시설의 위치나 규모가 『일성록』 등 문헌 기록과 거의 일치한다는 점이 밝혀졌고, 제방 축조 방법의 구체적인 내용이 조사되어, 조선시대 수리 시설 축조, 제방 축조 기술의 변화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