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저수지.
발굴 경위 및 결과
건립 경위
변천
형태와 특징
만년제 중앙에 괴성이라는 이름의 인공섬이 조성되었다. 괴성은 천원(天圓) 지방(地方)을 뜻하는 상징적 의미와 물의 순환을 통한 수질 정화의 기능을 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저수지를 네모꼴로 조성한 것이 땅이 모난 것을 상징하고, 괴성을 둥글게 만들어 하늘이 둥근 것을 본딴 것이었다. 『일성록』에 따르면 괴성은 지대(地臺)와 석축(石築) 상층을 각각 81보 규모로 축조되었다.
또한, 만년제에는 수문과 수갑(水閘)이 설치되어 제언 아래 경작지에 물을 대는 수량을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어 관개의 이로움을 누릴 수 있게 하였다. 만년제의 수문은 오방(午方)에 있었는데, 상수문과 하수문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제언 아래 몽리답(蒙利畓)이 최대 60여 석락에 달할 정도였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수원군읍지(水原郡邑誌)』
-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
- 『일성록(日省錄)』
- 『화성지(華城志)』
단행본
- 『만년제 3~5차 시·발굴조사』(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재연구원, 2017)
- 『한국수리시설의 변천과 문화유적』(농림부·농업기반공사, 2002)
논문
- 김준혁, 「정조시대 화성유수부 제언 축조와 둔전 경영」(『정조시대 농업개혁의 산실 수원화성』, 수원화성박물관, 2014)
- 염정섭, 「18세기 말 화성부 수리시설 축조와 둔전 경영」(『농업사연구』 9, 한국농업사학회, 2010)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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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땅속에 묻은 수채.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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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사도 세자의 묘. 정조 때 영우원을 고친 것으로, 후에 사도 세자를 장조로 추존(追尊)하고부터 ‘융릉’이 되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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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군적(軍籍)에 있는 지방의 장정. 16세 이상 60세 미만의 정남(丁男)으로, 국가나 관아의 명령으로 병역이나 노역(勞役)에 종사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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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길이의 단위. 1척은 한 치의 열 배로 약 30.3cm에 해당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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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물의 흐름을 막거나 유량을 조절하기 위하여 설치한 문.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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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이십사방위의 하나. 정남(正南)을 중심으로 한 15도 각도 안의 방향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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