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집』은 조선 후기 문신 심익운의 시가와 산문을 수록한 시문집이다. 책의 필사본으로 시집과 문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집에는 1754년부터 1766년까지 지은 시 318수가 실려 있으며, 다양한 시체를 익혀 수천 편 중 엄선한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문집에는 서, 기, 제발, 묘지, 제문, 고문, 서간, 잡저 등 65편의 글이 실려 있으며, 특히 학문관·정치관·인생관을 밝힌 「학수」, 「삼계」, 「논정」 등 잡저가 주목된다. 문장은 현실 풍자와 유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깊은 사유를 담고 있다.
심익운(沈翼雲: 1734~1783)의 본관은 청송(靑松)이며, 자는 붕여(鵬如), 호는 지산(芝山)이다. 1754년(영조 30) 진사가 되고 1759년 정시문과(庭試文科)에 장원하였다. 이조좌랑(吏曹佐郞)을 거쳐 1765년 지평(持平)에 올랐으며 1776년(영조 52) 패륜의 죄로 대사헌(大司憲) 박상로(朴相老)의 탄핵을 받고 대정(大靜)에 유배되어 죽었다.
2책의 필사본으로, 1책은 시집이며, 2책은 문집이다. 필사 연대는 미상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과 충북대학교에 소장되어 있다.
제1책에는 시 318수가 실려 있다. 저자가 쓴 「백일시집서(百一詩集序)」에 의하면, 이 책에 수록된 시는 저자가 21세 되던 1754년부터 1766년까지 14년 동안 지은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14세부터 과체시(科體詩) 짓는 법을 배웠으며, 진사가 된 뒤 동쪽 지방의 산천과 바다를 유람하면서 옛 시인의 작법에 따라 110편의 시를 지었으나 마음에 들지 않아 모두 태워버렸다. 그 뒤 고체(古體), 한위고체(漢魏古體), 성당체(盛唐體) 등의 시법을 공부하면서 다시 수천 편의 시를 지었고, 그중 좋은 시만을 뽑아 편집한 것이라고 한다. 명승지를 읊은 서경시가 많고, 승려들과 화답한 게송체(揭頌體)의 시와 장편의 연시(聯詩)도 있다. 특히 상여 소리를 흉내낸 「호야가(呼耶歌)」, 옥과(玉果)의 대밭을 읊은 「과지락가(果支樂歌)」, 합천(陜川)에서 지은 「죽죽비(竹竹碑)」 등이 주목된다.
제2책에는 문(文) 65편이 수록되어 있다. 저자가 남긴 문집(文集)의 서문에 의하면, 저자는 굴원과 사마천의 글을 공부하고, 반고의 『한서』와 범엽의 『후한서』를 읽었으며, 한유와 유종원의 문집을 익혔다고 한다. 서(序) 8편, 기(記) 8편, 제발(題跋) 10편, 묘지(墓誌) 3편, 제문(祭文) 4편, 고문(告文)과 뇌(誄) 2편, 서(書) 5편, 잡저(雜著) 19편이 실려 있다.
서(序)는 「봉송양천김사군서(奉送狼川金使君序)」와 같은 송서(送序)와 「영가김공문집서(永嘉金公文集序)」와 같은 서문을 포함한다. 제발은 모두 왕가 소장의 서첩(書帖)에 대한 것이다. 그 가운데에는 인선왕후(仁宣王后)가 필사했다는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와 현종의 언문 편지 11점이 포함되어 있다.
잡저 중에는 저자의 학문관 · 정치관 · 인생관 등을 표명한 글들이 많다. 「학수(學守)」 · 「삼계(三戒)」 · 「논정(論政)」 · 「설문(說文)」 · 「대소설(大小說)」 · 「백일축(百日祝)」 등이 대표적이다. 「학수」는 학문의 요령을 말한 것이다. 경(經) · 예(禮) · 문(文) · 사(史)를 한꺼번에 하는 것은 장사치의 학문이라고 비판하고, 그 가운데 어느 한 가지만을 전공할 것을 강조하였다. 「삼계」에서는 외환(外患)이 많은 것은 국가의 경사이며, 빈천한 것은 집안의 다행이며, 괴로움이 많은 것은 일신의 복이라고 역설적으로 논하였다. 「논정」에서는 정치의 강령으로 부민(富民) · 겸덕(謙德) · 신법(信法)을 강조하였다. 「설문」은 일종의 문장론으로, 그 요체를 첫째 근원, 둘째 주제, 셋째 규범, 넷째 불가측한 신운(神韻)이라고 설명하였다. 「대소설」은 당시의 정치 세태를 풍자한 글이다. 큰 현인은 묻혀 지내고 작은 재사가 등용되며, 큰 죄는 빠져나가고 작은 죄는 처벌받는 아이러니를 지적한 것이다. 「백일축」은 세속의 유아 백일 행사가 미신적인 풍속이 아니라 예부터 전래된, 전통 있는 유교 행사임을 밝힌 흥미로운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