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의 태항아리.
개설
내용
유약은 담청(淡靑)을 머금은 백자유(白磁釉)로 전면에 고르게 시유되었다. 유빙렬(釉氷裂)없이 은은한 광택이 감돌며, 태토(胎土)는 정선되었다. 굽다리는 안바닥을 깎아 세웠으며, 모래받침을 받쳐 구운 흔적이 남아 있다. 뚜껑의 내저면(內底面)에 태토빚음을 십여 개 받쳐 구운 뒤 떼어낸 흔적이 있다.
의의와 평가
태항아리는 15세기까지 주로 분청사기(粉靑沙器)로 만들어지다가 15세기 후반경부터 백자로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16세기 전반경에는 백자가 발달함에 따라서 이처럼 뛰어난 태항아리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 항아리는 당시 관어용(官御用) 도자기를 제작하던 경기도 광주 일대의 무갑리, 우산리, 번천리 요지에서 생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국보』백자·분청사기(정양모 편, 예경산업사, 1984)
- 「이조백자태항」(강경숙, 『고고미술』49, 한국미술사학회,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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