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시대의 백자 태항아리 및 태지석.
개설
내용
유색은 회백색으로 가는 빙렬(氷裂)이 나 있으며, 항아리의 굽은 안바닥을 깎아 세웠고, 굵은 모래를 받쳐 구웠다.
태지석은 방형의 오석(烏石)이며, 윗면에 “皇明萬曆三年四月二十六日卯時生 王子慶龍阿只氏胎 萬曆九年四月初一日癸時藏(황명만력삼년사월이십육일묘시생 왕자경룡아기씨태 만력구년사월초일일계시장)”이라는 해서체의 명문이 음각되어 있다. 이 명문을 통하여 왕자 경룡아기씨[慶龍阿只氏]의 태호로 1581년(선조 14)에 제작 ·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이조전기의 백자태항」(이홍직, 『고문화』5·6, 한국미술사학회,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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