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기는 경사와 위사를 조직하여 직물을 생산하는 도구이다. 직기는 시대적, 지역적 다양성이 있고 크게 인력 직기와 동력 직기로 분류된다. 한국은 유물과 문헌자료를 통해 청동기시대에 직기 추, 원삼국시대에 원시 요기, 삼국시대에 요기, 조선시대에 고급 문양 직기와 요기에 속하는 베틀을 사용하였고 동아시아에서 독자적 직기 문화가 있었음이 확인된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근대적 섬유산업 발전으로 동력 직기가 일반화되었고 새마을운동 이후 농촌 지역에서 한국 전통 직기 베틀이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직기(織機)는 섬유로 만들어진 주1와 주2를 엮어 직물(織物)을 생산하는 도구이다. 직물은 의복(衣服), 생활 용구, 의례(儀禮) 물품 등 의생활(衣生活)의 기초이다. 고대부터 인류는 풀, 짚 등 식물 원료 자체 그리고 동물, 식물 원료를 주3 작업을 통해 섬유를 만들고 조직으로 엮어 직물을 생산하였다. 역사적으로 전 세계 각 지역에서는 직기를 사용하지 않고 직조자의 신체만을 이용하여 경사에 장력을 주어 직물을 직조한 사례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직물은 경사에 위사를 엮는 도구인 직기를 통해 생산된다.
고고학적 유물, 문헌자료 그리고 현장 조사로 파악된 전 세계 직기는 다종다양하다. 직기는 동력 차이, 섬유, 직물 조직, 경사 장력 유지 방식, 경사를 올리는 주4 작동 방식, 위사 조작 방식 등에 의해 시대와 지역적 다양성이 있다. 그러나 직기는 장력을 유지한 경사에 위사를 조직한다는 기본 원리는 동일하다.
직기의 다양한 분류 기준이 있음에도 직기는 동력을 기준으로 크게 인력 직기와 동력 직기로 분류된다. 인력 직기는 신석기시대부터 인류가 의류를 생산하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며, 직조자의 손과 발 등 신체 일부의 힘으로 직물을 생산한다. 동력 직기는 증기, 전기 등 동력으로 조작하는 직기 유형이다. 동력 직기는 18세기 후반 산업혁명 시기 영국의 에드먼드 카트라이트(Edmund Cartwright)가 발명하여 전 세계로 전파되었다.
인력 직기를 수직기(手織機)와 동일 개념으로 명명하지만, 이것은 정확한 개념이 아니다. 직물 생산은 경사 장력 유지가 필요하며 인력 직기와 동력 직기 모두 경사 장력 조절 장치가 필수적이다. 인력 직기는 직조자의 발과 손, 발과 허리, 발과 무릎 등 신체 부위가 경사에 장력을 주는 장치와 연결되는 방식으로 분류할 수 있고 수기(手機), 요기(腰機), 족기(足機), 기둥[柱]이나 활[弓]을 이용한 직기 등이 있다. 인력 직기는 산업화 시대 이전부터 사용되었으며 현재에도 전통 방식의 직물을 생산하는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에서 사용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에서 많이 사용된 인력 직기는 요기이다. 요기는 지역적으로 형태는 다양하지만, 작동 원리와 구성 부품은 유사하다. 요기는 원시 요기와 발전된 요기형으로 구분한다. 원시 요기는 틀을 갖춘 직기 없이 직조자가 바닥에 앉아 허리에 경사를 감고 경사 장력을 유지하는 직기 도구들을 조작하여 직물을 생산하는 직기이다. 원시 요기보다 발전된 요기는 틀을 갖춘 직기 위에 직조자가 앉고 직조자의 허리에서 연결된 경사가 직기의 구성 부품과 연결되어 직조자 허리의 장력 조절을 통해 직물을 생산한다.
이와 같은 유형보다 발전된 인력 직기는 직조자의 신체 일부를 수동으로 조작하면서 자동화된 부속 부품들이 직조자를 보조하는 족답(足踏) 직기와 밧탄 직기[Batan loom]가 있다. 족답 직기는 1802년(순조 2) 영국의 윌리엄 래드클리프(William Radicliffe)가 발명한 것으로, 직조자의 손 대신에 발로 직기 아래 발판을 밟아 직조하는 직기이다. 족답 직기는 발과 손을 함께 사용하는 재래식 족답기와 발을 밟는 것만으로도 직조가 이뤄지는 족답 직기로 구분된다. 자동화된 족답기는 산업현장에서 직물 생산성을 발전시켰다.
밧탄 직기는 1733년(영조 9) 영국 존 케이(John Kay)가 직기에 위사를 자동으로 투입하는 장치를 장착한 직기이다. 밧탄 직기는 스프링이 달린 북집에서 위사를 감은 북의 자동운동으로 경사와 위사를 직조하는 방식이다. 이 직기는 산업혁명 이후 서구 지역 그리고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지역 산업 현장에서 대량 직물 생산에 사용되었다.
동력 직기는 18세기 영국에서 발명되었고 증기를 동력으로 한다. 동력 직기는 기술 발전과 함께 증기 대신 전기, 부속 부품의 추가로 직물 산업화와 공장제 대량생산에 기여하였다. 동력 직기에는 제트 직기[jet loom], 레피어 직기[rapier loom], 그리퍼 직기[gripper loom] 등이 있다. 문직기(紋織機)는 인력 직기와 동력 직기를 혼합한 형태로, 인력 직기 혹은 동력 직기에 특수 장치를 부착하여 문양 직물을 생산하는 직기이다.
문직기는 복잡한 문양과 색상의 문양 직물 생산을 위해 필요한 다수의 종광과 이것을 조절하는 도비 장치를 갖춘 직기이다. 문직기의 종류는 직조 보조자가 직기 위에 올라가서 도비 장치를 보조하는 공인기가 있다. 이 외에도 사람이 도비 장치를 조작하는 공인기 방식이 산업혁명 이후 전산 자동화로 발전된 도비 직기와 자카드 직기가 있다. 도비 직기는 단순한 문양 직물, 자카드 직기는 도비 직기보다 복잡한 문양 직물을 생산할 때 사용되는 직기로, 문직기 역시 전 세계 직물 산업화에 변화를 불러왔다.
선사시대부터 근대 이후까지 한국의 직기들은 인력 직기와 동력 직기로 구분할 수 있다. 문헌과 유물 자료들은 한국에서 고대부터 직기를 사용한 직물 생산이 있었다는 사실을 추정하게 한다. 예로, 청동기시대 평안북도 공귀리 유적에서 흙 소재의 수직식 직기 추가 발견되었다. 원삼국시대 유적으로 추정되는 경산 임당동 저습지에서는 직조자의 허리와 연결되어 경사에 장력을 주는 목제 유물이 발견되어 원시 요기의 사용을 추정할 수 있다. 서기전 1세기 광주 신창동 유적에서는 직기 부속품인 나무 실감개와 위타도(緯打刀)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이 유물들은 직조자가 바닥에 앉아 직조하는 원시 요기 혹은 직기 기둥 역할을 하는 틀을 갖춘 직기를 사용하였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고구려시대 유적지인 평안남도 용강군 대안리 제1호분의 ‘베 짜는 여인’ 벽화는 직기의 기둥 틀을 갖춘 요기형 직기의 사용을 추정하게 한다.
이와 같이 전통 시기 한국에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요기는 전 세계적으로 모양은 다양하지만 작동 원리는 동일하다. 동아시아 지역의 요기는 역사적으로 유사한 시기에 등장한 것으로 추정되며 한국은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른 고유한 형태를 가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국의 원시 요기는 원삼국시대 유물 이 외에도 조선시대 기산 김준근의 ‘관 짜는 모양’ 그림에서 형태를 추정해볼 수 있다.
한국 전통 베틀로 알려진 직기는 원시형 직기의 발전된 형태이다. 베틀은 직기의 기둥 틀이 존재하여 직조자가 바닥이 아닌 직기 위에 앉아 허리와 경사를 연결하여 경사의 장력을 유지하며 직조를 하는 방식이다. 이와 같은 요기는 원시형 요기와 다르게 직조자가 바닥이 아닌 직기 위에 앉아 직조하므로, 발을 통해 자유롭게 경사를 벌리는 개구(開口) 운동이 가능하다. 『조선시대 풍속도』의 김홍도 「길쌈」 그림에 있는 베틀이 이 유형의 직기이다.
고려시대 『고려사(高麗史)』,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왕실 직조 기관에서 문직물을 직조하여 중국에 공물을 보낸 기록이 존재한다. 그러나 직기 관련 그림과 유물은 발견되지 않아 고려시대 사용된 직기에 관한 구체적인 논의는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조선시대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왕실 소속의 직조 기관 기록이 존재한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도 직기에 관한 그림과 유물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 중국 『농경전서』와 동일한 직기 자료만이 존재하지만, 이 직기가 조선시대 왕실에서 사용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영조 시대 『영조실록(英祖實錄)』에는 사치 금지를 위해 문직물 생산을 금지하고 왕실 직조 기관의 직기를 철거하라는 기록이 있으며 이 시기 문양 직기와 문양 직물 생산이 쇠퇴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정조 시대에는 조선의 낙후된 직물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북학파들을 중심으로 중국에서 새로운 직조 기술과 직기를 수용하여 조선의 직물 산업을 개량하기 위한 적극적인 시도가 이뤄졌다. 1876년(고종 13) 개항 이후에는 고종을 중심으로 전문 직조 기관인 직조국 설립과 함께 직물 기술 전수, 문직기 수입, 국내 직기 개량 등 직물업을 근대화하기 위한 시도가 이뤄졌다.
개항 후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의 강제적인 식민정책으로 한국은 섬유 원료 공급지와 군수물자 공급지로 전환되었다. 따라서 한국의 전통적인 직물 산업은 식민지적 근대 섬유산업으로 재편된다. 이 시기 한국 전통 베틀의 개량, 일본에서 유입된 개량 직기 보급, 전습소 설치를 통해 여성들에게 개량 직기의 기술 전수가 이뤄졌다.
6·25전쟁 이후 대한민국 정부의 근대화 정책과 함께, 독자적인 근대적 섬유산업이 발전한다. 이 시기 서울 등 수도권 지역은 근대적 섬유산업의 발전과 함께 공장제 생산으로 전환되어 동력 직기 보급이 일반화되었다. 지방의 농촌 지역들에서는 1970년대 이전까지 직물 생산은 가내 수공업적인 형태로 농촌 여성들의 중요한 생계 수단이었다. 1970년대 이전까지 지방의 농촌 지역에서는 전통적인 한국의 베틀과 개량된 족답식 직기가 사용되며 농촌 직물 생산이 이뤄졌다.
그러나 1970년대 국가 지역 개발 전략에 의한 새마을운동이 전개되면서 농촌지역 직물 생산 문화에 변화가 나타났다. 새마을운동이 전개되면서 농촌 생활환경 개선, 통일벼 보급과 농업생산의 다변화를 통해 여성들의 수입원과 생활환경이 변화하였다. 결과적으로 농촌 여성들의 가내 수공업적 전통 직물 생산이 벼농사 및 다른 현금 작물 재배로 전환되면서 한국의 전통 베틀도 농촌 지역에서 점차 사라졌다. 현재 한국 전통 베틀은 해당 지역 전통 직물 전수자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제외하고 지방 문화관 및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