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중일 ()

간재집 / 행장
간재집 / 행장
유교
인물
조선 후기에, 『간재집』 등을 저술한 학자.
이칭
가순(可純)
간재(簡齋)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75년(선조 8)
사망 연도
1660년(현종 즉위년)
본관
원주(原州)
출생지
미상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간재집』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가순(可純), 호는 간재(簡齋). 성균생원 변경장(邊慶長)의 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가 의주로 몽진(蒙塵: 임금이 난리를 피하여 다른 곳으로 옮겨감)하자 김성일(金誠一)이 초유사(招諭使)가 되어 의병을 모집하였다. 이때 가산을 팔아 구입한 쌀 100섬을 상주진(尙州鎭)으로 보내니 상주의 진장(鎭將) 김각(金覺)이 조정에 보고하였다. 그 뒤 김성일을 찾아 진주로 갔으나 김성일이 이미 전사한 뒤였으므로 곽재우(郭再祐) 휘하에 들어가 군무(軍務)에 종사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 때는 화왕성(火旺城)으로 달려가 박수춘(朴壽春)·성안의(成安義)·남사명(南士明)·유복기(柳復起)·정사성(鄭士誠) 등과 협력하여 대적(對敵)하였다. 광해조 때에는 선조가 국초에 나라로부터 하사받은 노비 30가구가 김해에서 살고 있음을 알고 추노(推奴)하려다가 그들의 무고를 입어 경옥(京獄)에 감금되었다.

인조반정으로 1623년 석방되었으며 노비 100가구를 하사받았다. 행의(行義: 의로운 행실)로 천거되어 참봉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아니하였으며, 뒤에 수직(壽職: 노인에게 내린 관직)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가자되었다. 1686년(숙종 12) 경상도안찰사가 그의 충효에 대한 행적을 조정에 알리니 특별히 정려를 명하였다. 저서로는 『간재집(簡齋集)』 2권이 있다.

참고문헌

『간재집(簡齋集)』
『숙종실록(肅宗實錄)』
『용사창의록(龍蛇倡義錄)』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권오호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