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무반 ()

고려시대사
제도
고려 전기, 여진 정벌을 위해 설치된 임시 군사 조직.
제도/법령·제도
제정 시기
1104년(숙종 9)
시행 시기
1107년(예종 2)
폐지 시기
고려 전기
시행처
고려 조정
내용 요약

별무반은 고려 전기 여진정벌을 위해 설치된 임시 군사 조직이다. 1104년(숙종 9) 동북면행영병마도통(東北面行營兵馬都統)으로서 여진정벌에 나섰다가 패하고 돌아온 윤관(尹瓘)의 건의에 따라 설치되었다. 여진족에 대항하기 위해 설치되었으며 강력한 기병대의 편제를 갖춘 부대이다. 별무반은 기병인 신기군(神騎軍), 보병인 신보군(神步軍), 승려들로 이루어진 항마군(降魔軍) 등으로 구성되었다.

정의
고려 전기, 여진 정벌을 위해 설치된 임시 군사 조직.
제정 목적

1104년(숙종 9)에 동북면행영병마도통(東北面行營兵馬都統)으로서 여진정벌(女眞征伐)에 나섰다가 패하고 돌아온 윤관(尹瓘)은 기병의 수적 열세를 크게 느끼고 기병을 강화할 것을 건의하였다. 고려는 이 건의에 따라 여진족에 대항하기 위해 강력한 기병대의 편제를 갖춘 별무반(別武班)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설치 동기는 당시 이군 주1를 중심으로 하는 기존의 군사 체제가 붕괴되어 대규모의 군사 동원이 불가능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조처였다. 별무반은 기병인 신기군(神騎軍), 보병인 신보군(神步軍), 승려들로 이루어진 항마군(降魔軍) 등으로 구성되었다.

내용

조직은 기병과 보병으로 나뉘며, 문무(文武) 산관(散官)주2에서부터 장사꾼과 노복에 이르기까지 모든 백성을 주3 대상으로 하였다. 이들 가운데 말을 가진 자는 기병인 신기군(神騎軍)에 속했고, 말이 없는 자는 보병으로서 신보(神步) · 도탕(跳蕩) · 경궁(梗弓) · 정노(精弩) · 발화(發火) 등의 군에 편입시켰는데, 나이 스물 이상이면서도 과거 응시자가 아니면 모두 신보군에 속하게 하였다. 윤관의 건의에 따라 기병을 강화하기 위하여 별무반을 설치하기는 하였으나, 주4를 낼 수 있는 계층이 문무 산관 정도였으며, 마상 무예를 익히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기병은 생각만큼 강화되지 못하였다.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별무반 내에는 활(弓)과 주5가 중심이 되는 특수 부대를 집중적으로 편성하였다. 별무반의 다수를 차지했던 신보군, 그 가운데서도 · · · 출신의 백성들은 주현군(州縣軍)으로서 일부 전투에 참가하기도 하였지만 대부분은 여진 지역을 점령한 뒤에 성을 쌓는 일 등 주7을 담당하였다. 그 밖에 주8들로 구성된 항마군(降魔軍)이 있었다.

이와 같이 여러 계층에서 동원된 별무반을 주9과 모든 진(鎭) · 부(府)의 군인과 함께 4계절 훈련시켜 대규모의 여진정벌을 계획하였다. 계획이 실천에 옮겨지기 전에 숙종(肅宗)이 승하했으나 그 뒤를 이은 예종(睿宗)이 적극적으로 여진정벌을 추진하였다. 특히, 예종은 즉위하자마자 곧 동계(東界)주10 하고 동계가발병마사(東界加發兵馬使) · 동계행영병마사(東界行營兵馬使) 등을 두어 동계 방면에 대한 군사 체제를 강화하였다.

그리고 1106년(예종 1) 7월 조정에서 동여진 정벌에 대한 주11이 있었다. 이때 도병마사(都兵馬使)는 앞서 동여진과의 싸움에서 패한 원인을 주12이 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지적하면서, 일찍이 현종(顯宗) 때 거란 침입 시에 시행했던 주13을 따를 것을 청해 시행하게 하였다. 그해 윤관과 오연총(吳延寵)주14 밖에서 신기군과 신보군을 주15 것으로 보아 별무반의 편성이 신속하게 추진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동여진 정벌의 주력 부대가 별무반이었음을 볼 때, 도병마사가 주16 군령은 바로 별무반을 중심으로 한 군율이라 하겠다.

1107년(예종 2)에 윤관은 엄격한 군율 아래, 병기주17을 개량한 대병력의 별무반을 이끌고 여진족을 정벌하였다. 그리고 고려 동북쪽의 변경 지역을 개척하기 위해 구성(九城)을 쌓는 공적을 세웠다.

의의 및 평가

별무반은 여진정벌이 끝남으로써 해체된 것으로 보인다. 직업 군인이 아니라 임시적인 군사 조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인 규모로 농민 중심 군사 부대가 조직되었다는 점은 고려의 군사 제도에 새로운 변화를 주었다는 측면에서 의의가 크다.

참고문헌

원전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논문

김낙진, 「고려 숙종·예종대 여진정벌과 별무반의 전술체계」(『한국학논총』 47,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7)
김당택, 「별무반의 설치와 군제의 변화」(『고려군제사』, 육군본부, 1983)
김당택, 「고려 숙종·예종대의 여진정벌」(『동아시아 역사의 환류』, 지식산업사, 2000)
김상기, 「여진관계의 시말과 윤관의 북정」(『국사상의 제문제』 4, 국사편찬원회, 1959)
이기백, 「고려별무반고」(『김재원박사회갑기념논총』, 을유문화사, 1969)
조인성, 「고려전기 군제의 붕괴: 경군을 중심으로」(『한국사』 13, 국사편찬위원회, 2003)
주석
주1

고려 시대 경군(京軍)의 군제. 이군(二軍)과 육위(六衛)로 나누었다. 우리말샘

주2

관아에 속하여 말단 행정 실무에 종사하던 구실아치. 고려 시대에는 중앙의 각 관아에 속한 말단 행정 요원만을 가리켰으나, 조선 시대에는 경향(京鄕)의 모든 이직(吏職) 관리를 뜻하였다. 우리말샘

주3

국가에서 특별한 일에 필요한 사람이나 물자를 강제로 모으거나 거둠. 우리말샘

주4

전쟁에 쓰는 말. 우리말샘

주5

쇠로 된 발사 장치가 달린 활. 여러 개의 화살을 연달아 쏘게 되어 있는 것으로, 주로 낙랑 무덤에서 나오고 있다. 우리말샘

주7

국가나 공공 단체가 지우는 의무. 우리말샘

주8

수행하는 승려의 무리. 우리말샘

주9

‘무반’을 달리 이르던 말. 궁중의 조회 때에 문관은 동쪽에, 무관은 서쪽에 벌여 선 데서 나온 말이다. 우리말샘

주10

돌아다니며 사정을 보살피다. 우리말샘

주11

어떤 사안에 대하여 각자의 의견을 제기함. 또는 그런 의견. 우리말샘

주12

군사상의 명령. 우리말샘

주13

모든 군인에게 적용되는 군대 내의 규범이나 질서. 우리말샘

주14

고려시대 개경의 동문(東門). (역사용어시소)

주15

부대의 훈련 정도나 장비 유지 상태를 검열하다. 우리말샘

주16

어떤 안건을 제시하여 결정하여 달라고 청구하다. 우리말샘

주17

전쟁에서, 군사를 지휘하여 전투를 승리로 이끌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이나 기술.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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