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와요 ()

목차
조선시대사
제도
조선시대 민수용 기와를 제조, 판매하던 관설제와장(官設製瓦場).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조선시대 민수용 기와를 제조, 판매하던 관설제와장(官設製瓦場).
내용

15세기 초엽부터 16세기 말엽까지 존속하였다. 1406년(태종 6)에 승려 해선(海宣)의 청원으로 처음 설치되었으며, 설치 당초부터 와서(瓦署)와 같이 제조(提調)와 부제조(副提調) 등 관리를 두었다.

그러나 실제 운영은 해선을 화주(化主)로 삼아 담당하게 하고 기술자를 제외한 일반노무자도 역시 승려들을 각 절에서 동원하여 충당하였다. 별와요는 한때 기근으로 인한 수요감퇴로 폐지되었다가 1424년(세종 6)에 해선에 의하여 다시 설치할 것이 건의되었고 또 새로운 운영방안도 제시되었다.

1431년에는 서울의 동북부와 서남부·중부에 별와요 각 1개소씩을 증설하였다. 관설 제와장으로서의 별와요는 그 설치목적이 민수용 기와를 공급하는 데 있었고 따라서 공급대상도 양반가보다 일반민가에 치중하여 보급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 운영을 승려들이 주관하고 있었으므로 관설 제조장이면서도 영리를 추구하게 되어, 제품은 서민층보다 구매력이 높은 양반층을 대상으로 판매되었으며 이와 같은 별와요 판매대상의 변화는 그것이 사실상 사영 제와장화하였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임진왜란 이후 사영 제와장이 발전함으로써 민수용 기와는 물론 관수용 기와까지도 사영제와장이 공급하게 되어 이 때에 와서는 유명무실화하고 별와요는 폐지되었다.

참고문헌

『경국대전(經國大典)』
『태종실록(太宗實錄)』
『세종실록(世宗實錄)』
『성종실록(成宗實錄)』
「별와요고(別瓦窯考)-조선시대(朝鮮時代)의 제와업발전(製瓦業發展)-」(강만길, 『사학지(史學誌)』1, 1967)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