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초엽부터 16세기 말엽까지 존속하였다. 1406년(태종 6)에 승려 해선(海宣)의 청원으로 처음 설치되었으며, 설치 당초부터 와서(瓦署)와 같이 제조(提調)와 부제조(副提調) 등 관리를 두었다.
그러나 실제 운영은 해선을 화주(化主)로 삼아 담당하게 하고 기술자를 제외한 일반노무자도 역시 승려들을 각 절에서 동원하여 충당하였다. 별와요는 한때 기근으로 인한 수요감퇴로 폐지되었다가 1424년(세종 6)에 해선에 의하여 다시 설치할 것이 건의되었고 또 새로운 운영방안도 제시되었다.
1431년에는 서울의 동북부와 서남부·중부에 별와요 각 1개소씩을 증설하였다. 관설 제와장으로서의 별와요는 그 설치목적이 민수용 기와를 공급하는 데 있었고 따라서 공급대상도 양반가보다 일반민가에 치중하여 보급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 운영을 승려들이 주관하고 있었으므로 관설 제조장이면서도 영리를 추구하게 되어, 제품은 서민층보다 구매력이 높은 양반층을 대상으로 판매되었으며 이와 같은 별와요 판매대상의 변화는 그것이 사실상 사영 제와장화하였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임진왜란 이후 사영 제와장이 발전함으로써 민수용 기와는 물론 관수용 기와까지도 사영제와장이 공급하게 되어 이 때에 와서는 유명무실화하고 별와요는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