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필사본. 작자는 인조 때 좌의정을 지낸 춘성부원군(春城府院君) 시북(市北) 남이웅(南以雄)의 부인이다. 이 일기는 인조 14년(1636) 12월부터 인조 18년(1640) 8월까지 3년 10개월에 걸쳐 기록한 것이다.
겉표지의 제목은 ‘숭정병자일기(崇禎丙子日記)’로 되어 있으나 대개 ‘병자일기’라는 제목으로 통용된다. 원본은 충청남도 공주군 반포면 공암리(성강마을)에 있는 남산영당(南山影堂)에 후손들이 보존, 관리하고 있으며, 축소 영인본 전문이 『역주 병자일기(譯註 丙子日記)』에 실려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원본은 한 책으로 묶여 있으나, 종이의 크기로 보아 본래는 네 책으로 되어 있었던 것을 합철한 듯하다. 현재 전하는 책은 표지 1장에 본문 72장으로 되어 있는데, 내용상으로 보아 앞과 뒤에 각각 낙장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를 통하여 볼 때, 현재 전하는 것은 원래 있었던 기록의 중간 부분만인 것으로 짐작된다.
글씨는 해서체로 되어 있는데, 달필이라고 보기에는 곤란하지만 읽는 데에는 크게 불편하지 않다. 작품은 시간적 순서에 따라 난중피란기(亂中避亂期)·서산당진체류기(瑞山唐津滯留期)·충주체류기(忠州滯留期)·서울귀환기(歸還期)의 네 시기로 나눌 수 있다.
난중피란기는 병자호란으로 급히 피난길에 오른 병자년 12월 15일부터 난이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당진으로 거처를 옮긴 정축년 2월 17일까지에 해당하며, 피난길에 겪은 갖가지 어려움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서산당진체류기는 정축년 2월 18일부터 무인년 1월 25일까지에 해당하며, 친척들의 배려 속에 서산 당진에 머물면서 심양으로 떠난 남편을 걱정하고 죽은 자식들을 그리워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충주체류기는 무인년 1월 26일부터 같은 해 5월 28일까지에 해당하며, 남편과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과 농사를 지으며 집안을 꾸려가는 생활 주변의 이야기를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서울귀환기는 무인년 5월 29일 이후의 기록에 해당하며, 다른 시기의 기록들과는 달리 심양(瀋陽)에서 귀환한 남편의 일상 생활을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 작품은 작자와 창작 연대가 분명한 최초의 여성실기문학으로 병자호란에 대한 민간의 체험을 소상히 알려준다는 데 국문학사적 의의가 있으며, 민속학적으로나 국어학상으로도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