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주집(白洲集)』은 조선 후기 문인 이명한의 시(詩)·응제문(應製文)·서(序)·기(記) 등을 수록한 시문집이다. 1646년(인조 24)에 초간본이 목판으로 간행되었으며, 효종~현종 연간에 중간(重刊)되었다. 권수에 1647년에 김상헌(金尙憲)이 쓴 서문이 수록되어 있으며, 시와 산문이 문체별로 수록되어 있다.
이명한은 한문 사대가(漢文四大家)의 한 사람인 이정귀(李廷龜)의 아들이다. 관각 문인으로 일찍부터 이름을 떨쳤다. 그는 관각응제(館閣應製)의 작품이 유난히 많다.
이명한은 어려서부터 재주가 빼어나 글을 짓는 데 있어서도 매우 날쌔고 빨랐다. 서문에서 김상헌(金尙憲)은 그의 문장을 칭찬하여 “그 문장을 이룸에 있어서는 마치 큰물이 바다로 내리쏟는 것과 같이 신채(神彩)가 뛰어나고 음조가 부드러워 사람들은 그의 시를 하늘에서 얻었다고 하였다.”고 일컫고 있다. 장유(張維)도 그의 시를 두고 귀신과 같다고 칭찬한 바 있다.
남용익(南龍翼)은 『호곡시화(壺谷詩話)』에서 국조제가의 시를 평하면서 ‘호일(豪逸)’하다고 하여 호방하면서도 맑은 그의 시세계를 높이 평가하였다. 홍만종(洪萬宗)도 그 시의 빼어남을 공중누각에 비유한 바 있다. 아버지 이정귀가 어렸을 적에 그에게 한유(韓愈)의 「남산시(南山詩)」를 천 번이나 읽게 했다는 일화가 『서포만필(西浦漫筆)』에 실려 전하기도 한다.
『백주집』은 초간본(初刊本)과 중간본(重刊本)이 현전한다.
초간본은 23권 7책의 목판본으로, 1646년(인조 24) 경에 간행된 책으로 추정된다. 이명한이 벼슬길에 나가기 이전에 지은 여문(儷文) · 과체(科體) · 부(賦) · 표(表) · 책(策) 등은 따로 모아 별고(別稿)를 만들었다. 이 별고는 나중에 권24로 편차(編次)되었을 것으로 보이나, 인출(印出) 여부는 미상이다. 현재 연세대학교와 고려대학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중간본은 20권 9책의 목판본으로, 이일상(李一相)과 이단상(李端相)에 의해 효종, 현종 연간에 대구감영(大邱監營)에서 중간(重刊)된 것으로 보인다. 이때에 별고에 있던 부 · 표 · 책 등은 제외하고 변려문 등 일부를 원집(原集)에 편입하여 20권으로 재편하였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과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 등에 소장되어 있다.
별고는 현재 간행본은 보이지 않고, 국립중앙도서관에 초고본으로 추정되는 필사본이 소장되어있다.
권수에 1647년에 김상헌이 쓴 서문이 있다. 『백주집』 권1은 오언 절구와 육언 절구, 권2∼4는 칠언 절구, 권5 · 6은 오언 율시와 육언 율시, 권7∼9는 칠언 율시, 권10은 오언 배율과 칠언 배율, 권11은 오언 고시와 칠언 고시, 권12 · 13은 응제록(應製錄), 권14는 소(疏), 권15는 소와 차(箚), 권16은 서(序) · 기 · 발, 권17은 묘지명 · 묘갈명 · 묘표 · 행장, 권18은 신도비, 비음기(碑陰記), 비(碑), 시장(諡狀), 권19는 시장, 권20은 잡저로 제문 · 기우문(祈雨文) · 애사 · 상량문 · 기사(記事) · 서(書) · 송(頌)이다.
이명한의 「제평해사인가(題平海士人家)」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구름 바다 아득하고 달빛은 밝아/작은 마을 울타리 너머 모래사장 가까워/봄바람에 한 그루 매화꽃 눈인양/이곳이 바로 고산(孤山) 땅 처사의 집 아니런가〔雲海迷茫澹月華, 小村籬落近明沙, 春風一樹梅如雪, 莫是孤山處士家〕.” 조선 후기 비평가 중 한 사람인 홍만종이 이 시에 "청절(淸切)하다"는 시평을 붙였으며, 널리 회자되었다.
이명한이 심양(瀋陽)에서 읊은 「심관차청음운(瀋館次淸陰韻)」이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머문다 한들 근심할 것 없고/떠난다 해도 기뻐할 것 없네/가고 머무는 것이 다른 일 아니니/기뻐하고 근심함이 다만 한 이치로다〔留亦何所憂 去亦何所喜 去留非二途 喜悲惟一理〕.” 이 작품에서는 세상사에 초연하여 달관하려는 그의 의식을 읽을 수 있다.
잡저에 실린 「의대한신제표모묘문(擬代韓信祭漂母墓文)」과 같은 작품은 관각문인으로서의 솜씨를 한껏 발휘한 글로, 문장의 구사와 의론이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