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사찰터.
내용
2003년 궁남지의 종합정비계획에 포함되어 2005년부터 정확한 가람배치와 규모를 확인하고자 재발굴조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2005~2007년 3년간에 걸쳐 금당지, 목탑지, 동편일대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었다.
군수리사지에서는 강당지에 대한 재조사가 실시되지 않아 건물지 내부 초석의 배치 상태를 알 수 없었는데 일제강점기의 조사결과를 보면 군수리사지는 동서회랑지 북단에 동당과 서당, 그 외곽에 또 다른 동방기단 건물지로 불리는 별도의 건물지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즉 군수리사지는 사비 천도이후 정림사지의 건립 과정에서 성립된 정림사식 가람배치를 기본형으로 하면서도 동서회랑지의 외곽에 새로운 기능을 가진 건물들이 부가되는 새로운 변화를 보인다. 군수리사지는 와당을 비롯한 출토유물, 심초석과 사리의 안치방식, 건물지의 배치 등에서 볼 때 능산리사지와 왕흥사지의 중간 단계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 같다.
군수리사지는, 목탑, 금당, 강당이 남북일직선상에 놓이는 1탑 1금당식의 가람배치이다. 강당 좌우에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건물이 대칭으로 위치하며, 추정 동회랑지 동쪽 외곽에는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회랑 부분은 불분명하다. 중문지~목탑지, 목탑지~금당지, 금당지~강당지의 중심간 거리의 비례는1:1:1.5이다. 강당 좌우에 건물이 배치되는 곳은 군수리사지, 동남리사지, 왕흥사지, 능산리사지가 있다. 군수리사지와 능산리사지는 좌우 건물지가 모두 확인되고 있다.
군수리사지에서 특징적인 것을 살펴보면, 첫 번째는 기단 가장자리를 와적기단과 전적기단으로만 구축하였다는 점이다. 현재까지 모든 건물지에 기단 가장자리에 기와나 전돌을 사용하여 구축된 사례는 확인되지 않았다. 두 번째는 금당지에서 차양칸이 설치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금당지에서는 황룡사지와 군수리사지에서만 차양칸이 확인된다. 차양칸은 건물의 구조를 반하는 것으로 볼 때 다른 사찰 의금당지 구조와는 달랐을 것으로 생각된다. 세 번째는 동회랑지 외곽에 별도 건물지가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건물지는 왕흥사지에서도 확인되었다. 군수리사지에서도 이러한 건물이 좌우로 배치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3금당의 가능성은 희박할 것으로 판단된다. 네번째는 목탑지 심초석 사도를 조성하였다. 이는 지하식 심초 구조에서 심초의 안치, 심주 입주, 진단의식 등 일련의 과정들을 복원할 수 있는 시설에 해당한다.
참고문헌
- 『백제불교사원의 성립과 전개』(이병호, 사회평론, 2014)
- 『부여군수리사지』(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2010)
- 『扶餘軍水里廢寺址發掘調査』(朝鮮總督府, 1936)
- 문화재청(www.ch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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