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기와와 토기를 굽던 가마터.
내용
당시의 간략한 조사일지에 의하면, 가마의 경사도는 약 35°정도로 매우 급한 경사를 이루고 있고, 가마 내부의 소성실(燒成室)에 단(段)이 형성된 계단식 등요(階段式登窯)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가마의 전체 길이가 8m 가량이고, 갱구(坑口)의 높이가 72㎝ 내외인데, 가마 안에서 기와 2장과 많은 토기 파편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에 출토된 기와나 토기 파편의 소재가 확인되지 않아 제품의 수급관계, 가마의 개요(開窯) 및 폐요(廢窯)의 시기 등이 밝혀지지 않았다.
현재 간선도로와 인접된 금성산 서쪽 산기슭의 북사면(北斜面) 등에 가마의 일부만이 남아 있을 뿐 대부분이 유실되어 있다. 그러나 당시의 조사일지와 가마터의 입지조건 등을 감안한다면, 이 요지는 산기슭의 경사면을 굴착하여 구축한 지하식(地下式)으로 소성실 바닥에 단이 있는 계단식 등요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기와와 토기를 함께 생산하여 공급한 와도겸업요(瓦陶兼業窯)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백제가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한 6세기 전반경에 개요한 중요한 백제시대의 가마터임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 『부여군지』(부여군지편찬위원회, 1987)
- 「부여의 백제요지와 출토유물에 대하여」(김성구, 『백제연구』21,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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