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사적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62,402㎡. 이 유적은 부여에서 남쪽으로 4㎞ 떨어진 백마강가의 내동마을 일원에 분포되어 있으며, 북고리 지역에도 산재한다. 1987년 7월 부여 지방에 내린 집중호우로 정암리 가마의 천장 일부가 노출된 것을 주민이 신고하여, 국립부여박물관이 1988년, 1990년, 1991년 3차에 걸쳐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백제 가마 11기와 고려시대의 가마 1기 및 작업장 관련 유구 1기가 확인되었다. 백제 시대 가마는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전반의 연꽃무늬숫막새, 서까래기와, 치미편, 암키와, 숫키와, 무문전돌 및 상자형 전 등을 제작했다.
가마는 구릉의 풍화 암반층을 옆으로 파고 들어가 구축한 지하식 평요(平窯)와 등요(登窯)가 함께 발견되었으며, 천장 부분은 없어졌으나 아궁이, 연소실, 번조실, 굴뚝이 완전하게 남아 있어 가마의 전체 형태와 구축 방법은 물론 세부구조의 모습과 축조기술을 밝힐 수 있게 되었다.
출토된 연화문와당과 상자형 전돌 등이 주변의 군수리사지 출토의 유물과 같아 관요(官窯) 생산체제였음을 알 수 있으며, 정암리가마와 거의 동일한 형태의 가마가 고대 중국과 일본에서도 확인되고 있어 고대 동북아시아에서 문화교류가 활발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정암리 와요지는 백제시대 6세기 후반 7세기 전반의 대단위 가마터가 단지를 이루며 분포하고 있어서 가마변천사 및 조와기술사(造瓦技術史) 연구에 매우 중요한 유적군이다. 또한 정암리 일원은 주변에 충분한 땔감을 공급할 수 있는 야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생산된 제품을 가까운 금강을 이용하여 도성인 부여로 운반할 수 있는 가마터로서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는 곳일 뿐만 아니라 고분·산성 등의 백제시대 유적이 다수 분포하고 있어 주목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