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관노정록 ()

고전산문
작품
1773년(영조 49)에 유의양(柳義養)이 지은 기행수필.
목차
정의
1773년(영조 49)에 유의양(柳義養)이 지은 기행수필.
내용

필사본. 원래는 4권 4책이나 현재 전하고 있는 것은 제1권 1책이 결실된 제2∼4권의 3권 3책이다.

이 책은 지은이가 1773년에 종성으로 유배되었다가 3개월 동안 머물고 돌아와서 지은 것이라 한다. 그러나 여러 가지 면에서 볼 때, 심상조(沈尙祖)에게 시집간 딸이 10세 전후에 지은이에게서 구술(口述)로 전해받은 내용을 기록한 듯하다.

제2권에서는 북청읍(北靑邑)-단천읍(端川邑)-마천령(摩天嶺)-성진참(城津站)-길주읍(吉州邑)-명천읍(明川邑)-경성읍(鏡城邑)-부령읍(富寧邑)-회령읍(會寧邑)-방원(防垣)까지의 노정과 그 사이에서 보고 듣고 느낀 사화(史話)·시화(詩話)·지명연기설화(地名緣起說話)·지방풍속 등을 기록하였다.

제3권에서는 방원에서 종성까지의 30리 길과 종성에서 귀양살이하며 경험한 지방의 풍속·언어·설화 등을 기록하였다.

제4권에서는 1773년 10월 5일(음력) 귀양이 풀렸다는 소식을 들은 10월 17일부터 출발 준비를 3일동안 하여, 10월 20일 종성을 떠나서 종성-온성읍(穩城邑)-훈융진(訓戎鎭)-종성-경원읍(慶源邑)-아산보(阿山堡)-경흥(慶興)-적지(赤池)-경흥-적도(赤島)-경흥-서수라(西水羅)-경흥-조산보(造山堡)-녹둔도(鹿屯島)-경흥-아오지(阿吾地)-행영(行營)-고령진(高嶺鎭)-회령을 두루 구경하고, 가던 길을 따라 서울로 돌아온 노정과 그 사이에서 보고 들은 사화·시화·잡설(雜說)들을 기록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이 작품은 지은이 자신이 지은 한시가 10여편이나 되고, 남의 한시를 인용한 것이 17편이나 되는 등 문학성이 높은 국문 기행록이다.

특히, 지은이가 당시의 북관지방 언어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여기에 사투리를 후에 보도록 약간 기록한다.”면서 “어미를 워미라 하고, 형을 형애라 하고, 오라비의 처를 올집어미라 하고, 아우는 더런이라 하고, 도토리를 밤이라 하고, 밤은 참밤이라 하고, 호박은 동화라 하고, 동화는 참동화라 하고, 수수는 숙기라 하고, 옥수수는 옥숙기라 하고, 천둥소리는 쇠나기 운다 하고, 장마 지면 마졌다 하고, 강가를 개역이라 하고, 병아리는 뱡우리라 하고, 꿩의 새끼를 질우개라 하고, 솔개를 술개라 하고, 닭 부르기는 죠죠 하고, 돼지 부르기는 오루러 하고, 돼지새끼는 꼴꼴 하고, 고양이를 곤냥이라 하고, 망아지 부르기는 허허 하고, 황소는 둥구레라 하고, 벙거지는 털갓이라 하고, 그저 갓은 빗갓이라 하고, 홍두깨는 다드밋대라 하고, 괭이는 곽지라 하고, 머리 댕기는 당긔라 하고, 체는 채라 하고, 바삐 걸으라는 말은 재오 걸으라 하고 또 죵죵 걸으라고도 하고, 오색빛을 일컫기는 홍색은 발가가라 하고, 청색은 퍼러러라 하고, 황·백·흑색들은 누러러·허여여·검어어라 하여 말을 거듭 이르고, 다섯을 닷쾌라 하고, 여섯은 엿과라 하고, 일곱은 일괘라 하고, 가져오라는 말은 개야오라고 하더라.”라고 30여 개의 어휘를 소개하고 있어, 영조시대 방언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이 작품은 유배생활을 소재로 한 산문체 국문 기행록 중에서는 「남해문견록」 다음으로 두번째 작품이라는 점, 영조시대 북관지방 언어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는 점, 조선시대 적객(謫客)들의 유배행태의 파악에 도움을 준다는 점, 조선시대 시화와 사화연구에도 훌륭한 자료가 된다는 점, 영조시대의 북관지방 서민들의 생활상 파악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는 점 등에서 가치가 있다. 2·3권 2책은 이능우(李能雨)가 소장하고 있고, 제4권 1책은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북관로정록』(최강현 역주, 일지사, 1976)
「북관로정록소고」(최강현, 『국어국문학』62·63합호, 1973 ; 『수필문학연구』, 정음사,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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