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선항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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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개념
고려시대 예성강에서 중국 등주 또는 밀주와 통하던 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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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시대 예성강에서 중국 등주 또는 밀주와 통하던 항로.
내용

등주항로(登州航路) 또는 동로(東路)라고도 하였다. 고려 때 중국과 통하는 항로는 예성강에서 서해를 건너 산둥(山東)반도의 등주(登州 : 山東省 蓬萊縣) 또는 밀주(密州 : 山東省 諸城縣)에 이르는 북선항로가 있었고, 또 다른 하나는 예성강에서 떠나 한반도 서해안의 자연도(紫燕島 : 지금의 인천)·마도(馬島 : 지금의 충청남도 서산시 海美 서쪽)·고군산(古群山)·죽도(竹島 :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興德 서쪽)·흑산도(黑山島)를 거쳐 서남쪽으로 바다를 건너 중국명주(明州 : 浙江省 0x9723縣)에 이르는 남선항로(南線航路, 明州航路)가 있었다.

고려와 송(宋)과의 왕래는 초기에는 주로 북선항로를 이용하였으나, 요(遼 : 契丹)의 눈을 피하기 위하여 문종 때부터는 주로 남선항로를 이용하게 되었다. 북선항로는 우리 나라의 옹진반도와 중국의 산둥반도를 연결하는 항로로서 우리 나라와 중국 사이의 해로로서는 가장 거리가 짧은 이점이 있었다.

그러므로 고려 때뿐만 아니라 신라 때에도 남양만을 떠나 바다를 건너 산둥반도 등주에 이르는 북선항로와 거의 같은 항로를 활발히 이용하였다.

『송사(宋史)』 고려전(高麗傳)에 의하면 993년(성종 12)에 송나라 사신 진정(陳靖) 등이 산둥반도에서 배에 올라 순풍을 이용하여 2숙(宿) 만에 옹진구(甕津口)에 상륙하여 육로로 해주·염주(塩州 : 지금의 황해도 연안)·배천(白川)을 거쳐 개성에 도착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을 보면 옹진반도에서 산둥반도까지의 해로는 보통 2숙, 즉 2, 3일 정도에 횡단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도경(高麗圖經)』
『송사(宋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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