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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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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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서울 북부 광화방에 있던 훈련도감의 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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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서울 북부 광화방에 있던 훈련도감의 본영.
내용

훈련도감의 본영으로서 창덕궁 서쪽 지금의 원서동에 있었다. 건물은 총 235칸이다. 본영은 훈련도감의 사령부였을 뿐만 아니라 창덕궁을 경비하는 주력부대 역할을 담당하였다.

1679년(숙종 5) 경기 속오군 가운데서 건장한 군사를 뽑아 장초보(壯抄保)를 편성하여 겨울철 3개월간을 북영에서 경비근무하게 하였다. 평상시 본영에는 훈련도감의 별장이나 천총(千摠) 등 당상 장수 1인이 파총(把摠) 1인, 기패관(旗牌官) 1인, 대기수(大旗手) 17인, 취고수(吹鼓手) 15인, 당보수(塘報手) 4인, 순령수(巡令手) 2인, 뇌자(牢子) 2인과 일반 군사들을 거느리고 근무하였다.

왕이 경희궁으로 거처를 옮기면 훈련도감의 본영도 그 정문인 흥화문(興化門) 밖의 신영(新營)으로 이동하였다. 왕이 친림하여 창경궁의 춘당대(春塘臺)에서 성균관 유생들을 고시할 때는 북영의 당상 장수와 담당 관원이 입직한 표하군(標下軍) 30인을 거느리고 집춘문(集春門) 밖에서 도열하여 경호를 담당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만기요람(萬機要覽)』
『육전조례(六典條例)』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집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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