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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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서울 북부 광화방에 있던 훈련도감의 본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영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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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서울 북부 광화방에 있던 훈련도감의 본영.

내용

훈련도감의 본영으로서 창덕궁 서쪽 지금의 원서동에 있었다. 건물은 총 235칸이다. 본영은 훈련도감의 사령부였을 뿐만 아니라 창덕궁을 경비하는 주력부대 역할을 담당하였다.

1679년(숙종 5) 경기 속오군 가운데서 건장한 군사를 뽑아 장초보(壯抄保)를 편성하여 겨울철 3개월간을 북영에서 경비근무하게 하였다. 평상시 본영에는 훈련도감의 별장이나 천총(千摠) 등 당상 장수 1인이 파총(把摠) 1인, 기패관(旗牌官) 1인, 대기수(大旗手) 17인, 취고수(吹鼓手) 15인, 당보수(塘報手) 4인, 순령수(巡令手) 2인, 뇌자(牢子) 2인과 일반 군사들을 거느리고 근무하였다.

왕이 경희궁으로 거처를 옮기면 훈련도감의 본영도 그 정문인 흥화문(興化門) 밖의 신영(新營)으로 이동하였다. 왕이 친림하여 창경궁의 춘당대(春塘臺)에서 성균관 유생들을 고시할 때는 북영의 당상 장수와 담당 관원이 입직한 표하군(標下軍) 30인을 거느리고 집춘문(集春門) 밖에서 도열하여 경호를 담당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 『만기요람(萬機要覽)』

  • - 『육전조례(六典條例)』

  •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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